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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중국 정부가 증시 폭락을 방임했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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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최근 중국 증시가 폭락과 반등을 겪다가 정부의 강력한 개입으로 겨우 진정됐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비판하는 목소리가 크다. 주가가 3주간 30% 넘게 급락할 때 정부가 금리 인하, 신용거래 제재 완화, 공매도 금지 등의 대책을 내놓았으나 시장이 진정되지 않으면서 ‘무능한 정부’라는 평가가 있었다. 이후 정부가 주요 주주의 주식 매도 금지, 주식구입기금에 무제한 자금 공급과 같은 초강력 처방을 하면서 증시가 안정됐다. 이번에는 개인의 사유재산권에 대한 직접 규제를 포함한 ‘사회주의적’ 조치들이 ‘투자자들의 시장에 대한 신뢰를 망가뜨릴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정부가 어느 정도 시장에 개입해야 하는가는 어려운 문제다. 치안·국방과 같은 공공 서비스를 정부가 공급하는 것은 당연하다. 민간 소비와 투자가 침체하고 대량 실업이 있다면 금리를 낮추고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 하지만 시장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장에 개입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경제학자들의 견해가 다양하다. 금융시장이나 부동산의 거품이 있을 때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가도 논쟁거리다.

 모든 경우에 항상 맞는 경제 이론은 없다. 시장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계획경제 사이의 다양한 경제체제마다 정부의 역할이 다르다. 각 국가의 발전 단계, 시장의 성숙도, 경제 관료의 능력에 따라 정부의 적절한 개입 정도는 달라진다.

 1990년대에는 미국 정부와 워싱턴에 위치한 주요 국제기구들이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를 전 세계 국가들에 전파했다. 순수한 시장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대표적인 경제 이념으로 탈규제를 통한 경쟁 촉진, 민영화, 무역 및 자본 자유화, 정부 개입 축소 등을 골자로 한다.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립하는 개념은 베이징 컨센서스(Beijing Consensus)다. 권위주의 정부의 광범위한 시장 개입, 점진적인 경제개혁, 혼합소유제를 특징으로 한다. 중국 학자들은 중국의 발전 경험에 기초한 베이징 컨센서스를 개발도상국들에 개발 전략으로 전파하고 있다. 그러나 두 이론 모두 극단적인 이념에 기초해 다른 국가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중국의 고도성장에서는 중국만의 특수한 요인들보다는 높은 저축률, 무역 개방, 우수한 인력, 건전한 정부 재정, 사유재산권 도입 등이 중요했다. 이는 과거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고도성장과도 많은 공통점이 있다. 권위주의 정부가 경제 개발을 추진한 점도 비슷한데 이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평가는 일치하지 않는다. 흔히 동아시아 경제에서 권위주의 정부의 시장 개입이 심했고 결과적으로 고도성장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가지고 정부의 개입이 경제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인과관계는 확실하지 않다. 많은 연구는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정부가 수출 산업을 광범위하게 지원한 정책들이 경제성장에 도움을 주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너무 조급하게 첨단 산업을 육성하려다가 실패한 경우도 있었고 과도한 금융시장 개입으로 부실 대출이 늘어나고 위기를 맞기도 했다. 정부 개입이 많다고 무조건 경제 발전이 빨라지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효율적으로 개입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만일 중국 정부가 이번 증시의 폭락 사태를 방임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주식시장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기 때문에 주가 폭락이 금융시스템이나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정책 당국자에 대한 신뢰가 낮아졌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과도한 신용거래에 의한 주식시장의 ‘비이성적 과열’을 막고 ‘도덕적 해이’를 줄이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주식시장의 폭락 사태에서 보듯이 빠르게 늘어나는 부채와 하강하는 경제성장이 서로 맞물려 중국 경제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2014년 총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282%로 미국보다 많다. 금융 규제와 감독을 받지 않는 그림자 금융에 의한 차입이 GDP의 65%에 달한다. 올해 상반기 공식 경제성장률은 7%로 하락세이고 실제치는 그보다 더 낮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중장기 개혁에 중점을 두고 내수 산업 발전, 국유기업의 민영화, 금융 부문의 자율화를 추진해 가고 있다. 아직 시장이 발전해가는 과정에 있고 정부가 경제를 끌어가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정부의 시장 개입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제 규모가 커지고 경제 불안 요인이 계속해 발생하는 새로운 환경에서 정부의 대응이 쉽지 않다. 과거 일본·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사례를 거울삼아 중국 정부가 앞으로 닥칠 위험에 효율적으로 대비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