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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굴 이용해 지역경제 살찌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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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일제시대 때 파놓은 토굴이 21세기 들어 ‘꿈 단지’가 될 줄이야-.

충북 영동군의 꿈이 ‘토굴’에서 익고 있다. 군은 영동읍 매천리 일대에 산재한 토굴의 잠재가치에 주목, 농산물 저장고나 포도주·젓갈류·장류 등 가공식품 숙성고, 관광자원 등 다양한 용도를 찾아 활용에 나섰다.

군은 현재 이곳 89개 토굴 가운데 3개를 활용 중이다. 2개는 포도주 숙성고로 개조해 쓰고, 나머지 1개는 과일 저온저장고로 이용하고 있다. 아직 시범적 수준이지만 군은 주변에 토굴과 연계한 대규모 관광개발 계획을 추진중이어서 토굴의 자원화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곳 토굴은 일본군이 탄약창으로 쓸 목적으로 해방 직전 주민을 동원해 파 놓은 것으로 한국전쟁 때는 대피용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크기는 대개 폭 3~4m, 높이 2~4m, 길이 20~30m로 사람이 드나들기에 전혀 지장이 없다. 또 암반에 굴착된 것이어서 붕괴위험이 거의 없다.

군이 토굴의 다목적 이용에 착안한 것은 굴 내부가 섭씨 12~14도의 온도와 80%의 습도를 연중 일정하게 유지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영동의 대표적 특산물인 포도를 재배하는 농민들과 이들이 참여해 세운 포도주 회사 주변에서 때마침 천연숙성고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에 따라 군은 활용방안을 모색키로 하고 1998년 초 일제 조사를 벌여 매천리 늘머니 40곳, 병마골 8곳, 변덕골 34곳, 도리비 7곳의 토굴을 확인했다. 이 가운데 51곳은 붕괴 등으로 폐허화해 사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나머지는 보수를 거치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 중 10곳은 차량진입까지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군은 이듬해 4천만원을 들여 산 35의 1번지 1호 토굴을 말끔히 정비한 뒤 전기시설과 출입문 등을 설치하고 포도주 숙성고로 인근의 포도주 생산 영농법인 와인코리아에 임대했다. 이곳에는 1만5천개의 병과 1백개의 오크통에서 포도주 30t이 5년째 익어가고 있다.

군은 또 작년에 2개의 토굴을 추가로 정비해 포도주 숙성고와 농산물 저장고로 사용하고 있다. 농산물 저장용 토굴은 고구마나 감자의 보관에 적합하다. 또 일반 과일을 장기보관하기 위해 온도를 4℃로 낮추더라도 일반 저온저장고보다 전기료 등 유지비를 훨씬 절약할 수 있다.

군은 앞으로 나머지 토굴도 포도주 시음장이나 피서체험장 등으로 다양하게 개발할 계획이다. 이는 군의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늘머니 과일랜드’조성 사업의 하나로, 3년 내 실현을 앞두고 있다.

늘머니 과일랜드 조성계획은 과일과 토굴을 모티브로 수립됐다. 영동은 전국 생산량의 9%를 차지하는 포도를 비롯해 감·호두·사과·배·복숭아 등의 과일 재배에 적합한 기후와 지형을 자랑한다. 과일랜드는 이 같은 과일을 소재로 한 대단위 테마공원이다. 주민소득과 연계한 관광명소화가 목적으로 토굴이 밀집한 늘머니 계곡 일대 17만평에 온갖 과일 관련 시설을 들일 계획이다. 후보지 가운데 이곳이 낙점된 것은 토굴의 잠재가치와 활용 극대화의 필요성 때문이다.

군은 여기에 지난 5월 행정자치부로부터 이미 ‘소도읍 가꾸기’ 대상지역으로 선정돼 지원이 확정된 1백억원을 포함, 2백21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곳에는 ^과일과학관^과일농원^과일숲 및 과일터널^과일박물관^열대과일 파빌리온 등 과일 관련 시설을 비롯해 전시판매와 문화·휴게·유통 공간인 늘머니센터와 숙박시설 등이 들어선다. 또 주변의 토굴을 이용한 체험장 형태의 토굴관도 설치된다. 그야말로 과일의 모든 것을 보고 배우고 즐길 수 있는 명소로 꾸민다는 구상이다.

군은 이를 위해 올부터 우선 2005년까지 늘머니센터와 과일과학관, 숙박시설 등을 갖추고 2006년 이후에도 연차적으로 시설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농정과 신해균 과수특작 담당은 “쓸모없이 버려진 토굴이 뜻밖에도 주민소득증대와 관광개발 등 지역발전의 유력한 자원으로 떠오르게 됐다”며 “앞으로 토굴은 각종 숙성·저장고뿐으로서가 아니라 농민들이 제조한 포도주나 음료를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동=안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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