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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자기장으로 뇌 흥분 가라앉혀 숙면 유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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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호 03면

피로·짜증·의욕 상실 동반
의학적으로 불면증 진단을 받으려면 3개월 이상에 걸쳐 1주일에 세 차례 이상 이렇게 잠들기 힘든 증상이 나타나야 한다. 불면증은 정신·육체적인 증상을 동반한다. 피로, 짜증, 하루 종일 멍한 증상 등 어떻게 보면 단순한 증상이다.

수면과학-새로 밝혀진 불면증 원인·치료

 하지만 이런 증상이 상시적·반복적으로 심하게 나타나면 감당하기 힘든 건강 문제를 부른다. 직장에서는 매사에 의욕이 없고 업무 효율이 떨어지며, 짜증이 나면 감정 조절이 어려워 주변 사람과 갈등·불화를 일으키는 일이 잦아진다.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지면 인간관계에 어려움마저 생긴다.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도 괴로워진다.

인구의 30%는 계절성 불면증
문제는 불면증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의 연구 결과 인구의 30%는 매년 일정 기간(특히 여름) 불면증을 호소한다. 심지어 인구의 10%는 만성불면증을 겪고 있다. 거의 1년 내내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실 여름철 불면증으로 인한 폐해는 어느 정도 묻힐 수 있다. 휴가나 직장에서의 근무 강도 완화, 근무시간 단축 등 계절성 여건 변화 때문이다. 이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는지를 감춰 치료 기회를 잃어버리는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 불면증에 대한 사회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대처가 필요한 상황이다.

 불면증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많고, 의학 연구가 활발한 미국에선 최근 그 원인과 치료법에 대한 심층 연구 발표가 줄을 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3일 불면증 원인에 대한 획기적인 연구결과를 전했다.

 불면증은 실제 수면시간 부족보다 대뇌의 한 부분이 지나치게 활성화돼 나타난다는 연구결과다. 미국 피츠버그의대의 정신의학 및 임상중계의학 교수인 대니얼 바이스 교수가 연구 책임자다.

대뇌 특정 부위 흥분이 원인
그는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이라는 첨단 진단기기를 이용했다. PET는 양전자를 방출하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사용한다. 이런 동위원소와 결합한 의약품을 체내에 주입하고 촬영기를 이용, 이를 추적해 신체 어느 부위에 많이 몰려 있는지를 파악하는 핵의학 검사법이다. 뇌질환이나 뇌 기능 평가에 이용되며 심장병, 암의 진단과 검사에 사용된다. 신체의 어떤 부위에서 어떤 특수 반응이 일어나는지를 알아보는 데 유용하다.

 PET를 이용해 수면 중 뇌 구석구석의 반응을 측정한 결과는 흥미로웠다. 불면증 환자는 수면 중 대뇌의 DMN(default mode network)이라는 부위가 정상인에 비해 훨씬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DMN은 인간을 내성적으로 변하게 하거나 심리적으로 방황하게 유도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이 지나치게 활성화하면 잠을 자면서도 대뇌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잠에서 깨면 “내 마음이 방황하는 것 같다. 밤새 생각에 골똘히 잠기느라 한숨도 못 잤다. 내 주변의 모든 일이 걱정된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바이스 교수는 “불면증은 수면 시간이 지나치게 적어 생기는 병이라기보다 수면 중 대뇌 특정 부위의 활성화가 지나쳐 생기는 증상”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잔 시간보다 덜 잤다고 착각
사실 환자들이 말하는 수면 시간은 불면증에서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수면을 연구하는 의학자 사이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영국 워릭대의 임상심리학 교수인 니콜 탕은 “제대로 잠을 못 잤다고 호소하는 환자를 실제로 검사하면 그중 절반이 실제로는 정상 수면 시간인 하룻밤에 여섯 시간 이상을 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수면학자들은 흔히 환자가 작성한 수면일기와 뇌파와 심박동수를 측정하는 폴리솜노그래피(polysomnography), 그리고 운동신경의 활동을 측정하는 액티그래피(actigraphy)를 활용해 수면 상황을 파악한다. 그중 수면일기에서는 자신이 제대로 자지 못한다고 적었지만 기기를 사용해 검사한 결과, 실제로는 충분한 시간을 잔 것으로 나타난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수면 시간 착각이 불면증 환자 사이에선 흔하다. 전문지인 ‘정신육체의학(Psychosomatic Medicine)’이 전한 연구에 따르면 불면증 환자의 42%가 자신이 실제로 잔 시간보다 1시간 정도 덜 잔 것으로 착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상인도 이런 오해를 하지만 그 빈도는 18%에 지나지 않았다.

몸은 자는데 대뇌는 번민
재미난 것은 평소 잠을 많이 자지 않고도 개운하다는 사람은 자신이 실제로 잔 시간보다 더 길게 잔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밀튼허시 병원의 정신과 교수인 훌리오 페르난데스 멘도사 박사는 “수면 시간을 물었을 때 7~8시간은 잔다고 답한 사람을 조사하면 실제 수면 시간은 평균 여섯 시간 남짓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수면 중 수차례 깨게 마련인데, 잠을 잘 잤다는 사람은 잠에서 깨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불면증 환자는 수면 중 뇌파도 빠른 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는 동안에도 대뇌가 이완되지 않고 예민한 상태라는 이야기다. 수면은 대뇌와 몸이 함께 휴식을 취하는 시간인데, 자칫 몸만 쉬고 대뇌는 번뇌에 빠져 있어 피로가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펜실베이니아대 피얼먼의대의 행동수면의학 프로그램 책임자인 마이클 펄리스 교수는 “이럴 경우 대뇌가 완전한 무의식 상태에서 깊게 잠들지 못한다”며 “잠을 자면서도 대뇌가 무의식 상태에 제대로 빠지지 못하고 감각 처리, 정보 처리, 단기 및 장기 기억 처리를 하고 있는 상태”라고 풀이했다.

명상요법·자석치료 주목 받아
그렇다면 수면의학 분야의 최신 발견은 앞으로 불면증 해소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바이스 교수는 “지나치게 활성화된 대뇌 특정 부위를 풀어주는 새로운 치료법과 약물 개발이 촉진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학계는 오랫동안 불면증 치료에 심리요법이나 약물을 주로 이용해 왔다.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거나 수면제를 처방해 잠들게 유도하는 방식이다. 인지행동치료도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침대에서 잠 외에 딴짓을 하지 않도록 제한하거나, 수면과 부부관계 때를 제외하고는 침대를 쓰지 못하게 하는 자극조절요법이 있는데 모두 효과가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발견으로 새로운 치료 방식 도입이 가능하게 됐다. 그중 하나가 명상요법이다. 명상요법은 기존에도 심리요법의 하나로 권장되긴 했는데 이번 연구로 그 효과가 입증됐다. 깊은 명상을 하면 문제의 대뇌 DMN 주변의 신경 연결이 개선돼 자극을 완화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주목을 받는 최신 치료법의 하나로 TMS(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로 불리는 최신 자기(磁氣)치료법이다. 강력한 자기장 발생기를 머리 전체에 씌워 대뇌 특정 부위의 흥분을 가라앉히는 방식이다. 원래 우울증, 불안장애나 편두통에 사용되던 치료법이었다. 이를 활용해 대뇌의 DMN을 조용히 하게 하는 방법을 개발하면 불면증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여름 밤의 뒤척거림이 과학적 연구를 통해 해결될 날도 멀지 않았다.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hae.inta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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