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투혼' 최희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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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초이' 최희섭(24.시카고 컵스)이 미국 전역의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선사했다.

1루수인 최희섭은 8일(한국시간)뉴욕 양키스와의 경기 도중 플라이볼을 잡다가 같은 팀 투수 케리 우드와 충돌해 쓰러지며 머리를 땅바닥에 강하게 부딪쳤다. "쿵!"하는 소리가 3루수에게까지 들릴 정도였다.

최희섭은 의식을 잃었다. 그러나 트레이너가 달려나와 응급처치를 마칠 때까지 최희섭은 캐치한 볼을 꼭 잡고 있었다. 의식을 잃기 직전에 최희섭이 한 말은 "우디(케리 우드의 애칭)는 괜찮으냐"였다.

최희섭이 쓰러지는 순간, 시카고 컵스의 홈구장인 리글리 필드는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눈물을 흘리는 관중도 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최희섭의 몸이 들것에 실려 앰뷸런스에 오르자 누군가 최희섭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희, 섭, 초이! 희, 섭, 초이!" 그러자 모두가 따라했다.

컵스의 더스티 베이커 감독은 앰뷸런스 구급요원에게 다가가 뭔가를 건넸다. 최희섭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면서도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던 바로 그 야구공이었다. 최희섭과 충돌했던 케리 우드는 그 순간 마운드 한쪽에서 무릎을 꿇고 최희섭의 쾌유를 비는 기도를 했다.

최희섭에게 맨 먼저 달려갔던 컵스의 데이브 툼바스 트레이너는 "최희섭은 그 상황에서도 우디는 괜찮으냐(How Woody was doing)며 동료의 안부를 먼저 물었다"고 말했다.

그의 부상 투혼과 따뜻한 동료애가 알려지면서 컵스 선수들은 분발했다. 투수 케리 우드는 "그(최희섭)를 위해 우리가 꼭 이기자"며 동료들을 독려했다. 결국 컵스는 불리하던 전세를 뒤집고 역전승(5-2)을 따냈다.

원래 이날 경기는 통산 3백승에 도전하는 뉴욕 양키스의 로저 클레멘스가 주인공이었다. 부정 방망이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새미 소사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양키스의 일본인 타자 마쓰이 히데키의 활약도 주목거리였다. 그러나 경기가 끝나는 순간 스탠드에 울려퍼진 선수의 이름은 "희, 섭, 초이!" 하나뿐이었다.

베이커 감독과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뒤 병원으로 찾아가 의식을 회복한 최희섭에게 "우리가 이겼다"고 말했다. 그러자 최희섭은 감독의 손을 잡고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고 선수들이 전했다.

컵스에 '1승' 이상의 감동을 안겨준 최희섭은 정밀검사 결과 뇌와 목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나 충격이 워낙 컸던 탓에 당분간 경기 출전은 어려울 전망이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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