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아침]-박정대 '馬頭琴 켜는 밤'부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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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대한 기골의 악사가 연주하는 섬세한 음율, 장대함과 섬세함 사이에서 울려나오는 아름다운 음악소리, 모닥불 저 너머로 전생의 기억들이 바람처럼 달려가고, 연애는 말발굽처럼 아프게 온다

내 生의 첫 휴가를 나는 몽골로 왔다
폭죽처럼 화안하게 별빛을 매달고 있는 하늘
전생에서부터 나를 따라오던 시간이 지금 여기에 와서 멈추어 있다

풀잎의 바다 바람이 불 때마다 풀결이 인다
풀잎들의 숨결이 음악처럼 번진다

고요가 고요를 불러 또다른 음악을 연주하는 이곳에서 나는 비로소 내 그토록 오래 꿈꾸었던 사랑에 복무할 수 있다


-박정대(1965~) '馬頭琴 켜는 밤'부분

마두금은 위쪽을 말머리 모양으로 만든 몽골의 현악기다. 휴가 여행으로 떠난 몽골 대초원의 밤에 이 악기 연주를 듣는데 감흥이 일지 않을 수 없으리. 문명 이전, 한반도로 나오기 전 우리 조상이 살던 그곳에서 악사는 마두금의 현을 두들겨 마침내 내 마음의 시원에 그 울림을 전하고 만다. 진정한 여행은 나를 찾아가는 것. 그로부터 시작되는 사랑의 떨림이 여기 있다.

박덕규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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