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원 칼럼] 대북송금, 무엇이 문제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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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근태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 30명은 대북송금 특검수사가 사법처리에 치중하는 데 대해 비판했다. 이들은 "대북송금이 현행법의 테두리 밖에서 이뤄지기는 했지만 한반도 평화 증진을 위한 정책적 결단이라는 사실도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사실 대북송금 문제에 대한 논의는 사법적 측면에 국한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특검은 대북송금의 사법적 문제를 다루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특검이 실증법적 측면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대북송금이 제기하는 문제들은 실증법 위반 여부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북송금 과정에서 실증법을 위반했는가 하는 문제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 회담 놓고 '상거래'한 꼴

우선 '한반도 평화증진을 위한 정책적 결단'은 언제나 현행법을 위반해도 괜찮다는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한반도 평화증진을 위한 정책결단'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무슨 행동이건 집권자가 그것을 '평화증진을 위한 정책결단'이라고 주장해 현행법의 규제를 받지 않아도 된다면 그것은 법치주의 체제를 위협하게 된다.

다음으로 법률문제와는 별도로 대북송금 '결단'이 과연 현명한 정책결정이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정치에서도 그렇지만 주권을 주장하는 국가들 사이에서는 정책결정자의 의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책의 결과가 중요한 것이다.

정책결정자의 의도가 아무리 고귀하고 순수했다고 해도 그 정책의 결과가 바람직하지 못하면 그 정책은 실패한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현명한 정책결정자는 어떤 특정한 정책을 결정할 때 자신의 주관적 의도에 도취하지 않고 실제로 정책을 적용했을 때 예상할 수 있는 가능한 결과에 대해 엄격한 예측분석을 한다.

그러면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대북 송금의 결과는 어떤 것이었다고 보아야 할까? 대북송금은 6.15 남북 정상회담을 가능케 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대북송금 결정에 대한 평가는 남북 정상회담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달렸다.

그런데 6.15 남북 정상회담이 다른 정상적인 방법으로 합의해 개최되는 정상회담과 다른 점은 대북송금을 선행조건으로 이뤄졌다는 데 있다. 그러니까 남한측에서 보면 송금은 정상회담을 위한 비용이었지만 북한측에서는 그와 정반대로 남북 정상회담이 송금을 위한 비용이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남한은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일정액의 현금거래에 합의함으로써 북측에 정상회담을 구입하기 위해 앞으로 지불할 수 있는 정상회담 가격을 설정해 놓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러니까 6.15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거나 평화를 증진시킨 것이 아니라 정상회담 후에 남북이 상대방에 대해 기대할 수 있는 일종의 상거래 패턴을 설정해 놓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 남북교류 더 힘들게 만들어

물론 정상회담 후에 남북교류가 양적으로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몇년 간의 남북교류는 북한 경제의 지속되는 어려움 때문에 가능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대북송금 같은 실책 때문에 북한의 내부 사정으로 조성된 대북관계 개선의 역사적 기회도 포착하지 못한 것이다. 대화와 협상은 양측이 모두 협상을 통해 얻고자 하는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이뤄지는 정치행위다.

그런데 남북 정상회담은 회담 자체가 흥정의 대상이 됨으로써 한편에서는 회담의 개최 자체를 성공으로 보고 축배를 드는 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앞으로 기대할 수 있는 정상회담의 가격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남한은 북한측에 상당한 액수의 돈을 지불할 정도로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원하고 있다는 인식을 줌으로써 그 이후의 정상회담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런 뜻에서 대북송금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정책적 결단'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김경원 사회과학원 원장 고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