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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와인·사파리…당신이 그곳을 찾아야 할 3가지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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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 엘리자베스의 샴와리에서는 망원경이 딱히 필요 없다. 바로 코 앞에서 동물들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는 어디일까. 저마다 마음속에 품은 곳이 한둘 쯤 있겠지만 미국에서 가장 핫한 뉴스 사이트 버즈피드의 리스트에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Cape Town)이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그뿐이랴.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등 매력적인 도시를 선정할 때마다 수위를 다투는 곳이다. 그래서 케이프타운이 1위로 발표될 때면 ‘또 다시(again)’란 단어가 붙곤 한다.

이쯤 되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우리에겐 여전히 낯설다. 아프리카라는 대륙이 주는 이미지와 물리적 거리에 심리적 거리까지 더해져 한층 먼 곳으로 여겨지기 때문일 터다.

허나 실은 여행의 끝판왕처럼 여겨지는 남미보다 가깝고, 호화로움을 자랑하는 유럽 어디쯤이라고 해도 자연스레 믿길 만큼 우아한 매력을 자랑하는 곳이다. 만을 끼고 있는 항구 도시지만 도심 어느 곳에서나 구름이 걸려 있는 테이블 마운틴을 볼 수 있고, 1~2시간이면 녹음이 우거진 와이너리와 스릴 만점인 사파리에 닿을 수 있는 곳. 과연 그 매력의 끝은 어디일까. 궁금한 마음에 산 넘고 물 건너 그곳을 찾았다.

레일 위로 흐르는 5성급 기차…비행기에서 꿈꾸던 모든 것이 가능한 곳

프리토리아에서 케이프타운까지 향하는 최고급 기차 블루 트레인.

케이프타운으로 가는 가장 로맨틱한 방법은 바로 블루 트레인을 타는 것이다. 여러 노선이 있지만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Pretoria)에서 입법수도인 케이프타운으로 가는 27시간짜리 여정이 가장 일반적이다.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며 하루에도 사계절을 느낄 수 있다는 남아공의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도 있거니와 레일 위로 흐르는 5성급 기차를 가장 만끽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프리토리아 기차 역으로 가는 발걸음부터 우아하게 내딛고 싶다면 전날 밤은 크리클우드 매너(Cricklewood Manor)에서 묵도록 하자. 한국 대사관 지척에 있는 이 호텔은 런던 영주의 대저택에서 따온 이름처럼 최고급 세단 ‘1957 롤스로이스 실버 클라우드’로 숙박객을 모신다. 다음날 레드 카펫을 즈려 밟고 트레인 탑승 수속을 마치면 방마다 배정된 버틀러가 게스트를 맞이한다.

사실 9~11월 성수기를 제외한 비수기 기준으로도 디럭스 싱글룸 요금이 1박에 2만 690랜드(약 189만원)니 결코 싼 가격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엔 두 사람이 하루 동안 즐길 수 있는 가장 값진 호사가 기다리고 있다. 우선 객실 문을 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딱 알맞은 온도와 습도에 은은히 스며드는 햇볕이라니. 안락한 의자와 탁자는 독서욕에 불을 당기고 푹신한 침대와 샤워부스는 그간 장거리 비행에서 투덜거리며 꿈꿔왔던 모든 일을 가능케 해 준다. 거기에 와이파이까지 되니 천국이 따로 없다.

이 호화열차의 가장 큰 미덕은 무엇보다 여정에 집중케 하는 힘이다. 길에서 보내는 많은 시간을 잠으로 낭비해 버리는 대신 오가는 길 자체를 하나의 경험으로 만듦으로써 새로운 추억을 선사한다. 다이닝룸 담당 서버 토니는 그런 면에서 완벽한 파트너였다. 오전 10시 30분 브런치부터 와인 4잔을 연거푸 들이키게 하더니 룸으로는 아예 스파클링 와인을 병째로 보내왔다. 스테이크와 푸아그라 등 메인 메뉴는 물론 디저트 초콜릿 퍼지 푸딩까지 어느 것 하나 쉽게 포크를 내려놓기 힘들었다. 드레스 코드까지 있는 만찬이 한층 더 거창했음은 물론이다.

당초 우편 배달 업무용 기차에 침대칸ㆍ살롱 등 하나씩 더해 19량으로 만든 만큼 즐길 거리는 널려 있다. 통유리창으로 경치를 감상하고 싶다면 19호 컨퍼런스 카를, 위스키와 함께 시가를 피우고 싶다면 4호 클럽 카를 추천한다. 이튿날 오전 5시 클럽 카 문을 닫고 나온 건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었으니 “먹을 수 있는 만큼 먹고 마실 수 있는 만큼 마셔라”라는 오리엔테이션은 거짓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기차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그 잔잔한 덜컹거림을 그리워 했으니 단언컨대 한번 그 즐거움을 맛본 사람은 다시 찾게 되리라.

출출한 오후엔 하이 티, 볕 좋은 오후엔 와인 테이스팅

케이프타운은 스텔렌보시를 비롯해 웰링턴ㆍ팔 등 남아공 최고의 와인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포도밭과 사파리 등 대자연에서 즐기는 와인은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비행기로 17시간을 날아가고, 기차로 27시간을 달려가 도착한 케이프타운은 가히 신대륙이었다. 여느 산과 달리 꼭대기가 평평한 테이블 마운틴은 도심 어디에서도 보여 독특한 스카이 라인을 만들었다. 워터프론트에는 하얀색 배들이 정박한 가운데 커다랗게 돌아가는 빅 휠(Big Wheel)은 이곳이 항구 도시임을 실감케 했다. 누구는 샌프란시스코를 닮았다 했고, 누구는 시드니와 비슷하다 했지만 케이프타운은 그보다 훨씬 광활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지천에 널린 볼거리보다 한층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은 의외로 먹거리였다. 특히 밥은 굶을지언정 카페인과 알코올은 거르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딱 적합한 곳이었다. 한 차례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숨을 돌릴 즈음인 오후 2~3시면 어느 호텔에서든 하이 티(High Tea)를 즐길 수 있기 때문. 남아공의 하이 티는 영국의 애프터눈 티와 닮은 듯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상류층에서 시작된 사교 문화와 노동 계급의 허기를 채우기 위한 필요가 만났다고나 할까. 그래서 훨씬 더 다채로운 베이커리와 케이크가 등장한다.

우리는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는 더 테이블 베이 호텔(The Table Bay hotel)을 찾았다. 200랜드(약 1만8000원)면 3코스를 맛볼 수 있는, 디저트 파라다이스다. 길게 늘어선 음료 리스트를 보고 또 보다가 결국 가장 많이 마신다는 루이보스 차를 골랐다. 곧바로 샌드위치와 크레페가 담긴 접시가 앞에 놓이는가 했더니 에그타르트 등이 올려진 3단 트레이가 등장한다.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홈메이드 레몬 크림과 스콘으로 무장한 트레이가 다시 나타나고 20여 종의 디저트가 기다리고 있다. 특히 시그니처 상품인 무지개색 치즈케이크는 죄책감을 가득 안고 “어떡해”를 외치면서도 자꾸 다시 입으로 밀어넣게 되는 마성이 숨어있었다.

달달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차를 타고 근교 스텔렌보쉬(Stellenbosch)나 웰링턴(Wellington)으로 떠나보자. 포도밭 풍경을 따라 45분이면 와이너리에서 와인 테이스팅을 할 수 있다. 전문가라면 와인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선 끝맛이 남아있으면 안 된다며 한 입 맛보고 뱉고 물로 헹구고를 반복할 테지만, 화이트부터 레드, 드라이부터 스위트 정도만 알고 임하는 것이 정신적으로는 훨씬 더 행복할 터다.

델라이레 그래프(Dalaire Graff) 호텔에 도착하니 낯익은 로고가 눈에 띄었다. 블루 트레인에서 토니가 권했던 바로 그 와인이었다. 신선한 라즈베리향이 가득한 로제 와인 카베르네 프랑과 파인애플 끝 맛이 혀를 사로잡는 화이트 와인 셰닌 블랑을 다시 만날 생각에 마냥 들떴다. 소믈리에 심바 라쉐는 “남아공ㆍ뉴질랜드 등 뉴 월드 와인은 달콤한 과일향이 특징”이라며 “프랑스 등 올드 월드 와인보다 접근하기 쉬운 이유”라고 설명했다. 값은 한 병에 만 원도 안 되니 박스째 들고 오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하품하는 사자와 수영하는 하마…오프로드의 즐거움

남아공의 도심을 만끽했다면 이제 자연으로 떠날 차례. 비행기로 3시간 거리의 크루거 국립 공원이 남아공 최대 사파리지만 그 절반 정도의 시간이면 포트 엘리자베스(Port Elizabeth)의 프라이빗 사파리 샴와리(Shamwari)에 도착할 수 있다. 이곳의 좋은 좋은 점은 정해진 루트로만 움직일 수 있는 국립공원과 달리 우리를 인도하는 레인저의 촉과 감에 따라 얼마든지 오프 로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층 가까운 거리에서 꿈꿔오던 동물들과 교감할 수 있단 뜻이다.

17년의 레인저 경력을 자랑하는 웨슬러 롬바드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게임 리저브(Game Reserve)는 사냥이 아닌 관찰이 주목적이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를 인지하더라도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서는 안 된다. 또 그들이 야생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설명처럼 그는 진지하고 신중했다. 사륜구동 랜드로버를 거칠게 몰다가도 하마의 발자국이나 배설물을 보고 “이렇게 높이 올라온 흔적은 처음 본다”며 멈춰 섰다. 먹이는 주지 않았다. 오직 관찰만이 그들의 법칙이었다.

코끼리 떼를 마주친 순간 그의 진가가 발휘됐다. 넋을 놓고 지켜보고 있는 우리를 향해 코끼리들이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것이다. 웨슬리는 차를 후진하거나 당황하는 대신 단호하게 말했다. “모두 차 안에서 일어나거나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앉아 계세요. 플래시는 안됩니다.” 모두 숨죽이고 있는 가운데 10여 마리의 코끼리들은 두 길로 나뉘어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 큰 눈을 깜빡 깜빡이면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먼길을 떠나온 만큼 다들 버팔로ㆍ사자ㆍ코끼리ㆍ코뿔소ㆍ표범 등 ‘빅 5’를 만날 욕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아침과 오후 하루 2차례씩 진행되는 게임 리저브에서 반드시 ‘숨은 5종 찾기’를 완성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것이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이미 해가 진 저녁 우리를 째려보는 표범과 마주쳤을 땐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다른 곳에 눈이 갔다. 이를테면 표효하는 줄 알고 겁먹었는데 알고보니 하품을 하는 사자에게선 귀여움이, 신난듯 노랫소리 같은 울음을 뿜어내며 수영을 하는 하마에게서는 인간적인 모습이 느껴졌다. 실은 사자가 어제 사냥을 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4일은 배가 불러 우릴 해칠 가능성은 지극히 적다는 것과 하마는 헤엄치는 게 아니라 발로 땅을 걷는 것에 가깝다는 건 뒤늦게 알았지만 그 순간 자체로 자연의 한 장면에 동화될 수 있다는 게 무척 행복했다. 이틀간 4번의 리저브에 나섰지만 끝내 버팔로는 만나지 못했다. 끝까지 발을 동동 굴렀지만 그리 아쉽지만은 않았다. 다시 한번 떠나올 충분한 이유를 찾은 덕분이다.

케이프타운(남아공) 글ㆍ사진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취재협조 남아공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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