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성결혼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미국인 친구 J는 프린스턴대 졸업장에 1m80㎝의 키, 유머감각까지 갖춘 지구 대표 훈남이다. 단 하나 없는 게 여성에 대한 성적 욕구다. “아시아를 알고 싶다”며 한국에 온 그를 일터에서 만난 2003년, 그가 고백을 했다. “나, 남자가 좋아.” 그에게 소개팅을 제안했던 난 머쓱해지면서 깨달았다. 영화에서만 봤던 동성애자가 친구의 모습으로 내 눈앞에 나타났다는 걸. 쿨한 척하며 “아 그래?”라고 답했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가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랑 친구하는 거 싫으면 편하게 말해 줘.”

 이후 J와 그의 친구들과 더 친해지면서 불만이 하나 생겼다. 이 매력덩어리 생물학적 남자들이 왜 여성을 원하지 않는가. 이성애자 여성으로서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J는 아이비리그를 졸업한 중국계 미국인 의사를 만나 지난 4월 뉴욕시 한 서점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식장 앞엔 서울시청 앞을 메운 동성애자 반대 집회의 발레공연이나 “항문섹스 치료비 대주려고 피땀 흘려 돈 버는 줄 아십니까?” 식의 피켓은 없었다.

 스니커즈를 신은 J는 아이패드를 든 주례 앞에서 파트너와 반지를 교환하고 키스했다. 그리고 자신의 평생 단짝을 향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의 다음 구절을 낭송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면서 기도하고 노래하며 옛이야기를 하자. 겉만 치장하는 여자들이 있다면 비웃어 주고, 가엾은 불량배들이 법정의 소식을 전하는 것을 듣자꾸나. (중략) 우리는 신이 보낸 첩자처럼 이 세상의 수수께끼를 받아들이자.” 그렇게 부부(夫夫)가 된 이들은 가족과 포옹하고 친구들과 춤을 추며 포도주를 마셨다. 창피하지만 고백하건대 이 현장에서 난 많이 울었다.

 J는 조용히 결혼식을 치르고 싶어 했다. 어쩌다 보니 동성에게 끌려 결혼까지 했지만 자신의 성적 지향성이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도, 타인에게 자신의 성향을 강요하면 안 된다는 것도 잘 아는 현명한 녀석이다.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지난달 26일, 페이스북의 많은 프로필 사진이 동성애를 지지하는 무지갯빛으로 바뀌었지만 정작 J의 사진은 그대로다.

 동성결혼 합법화를 두고 한국도 시끄럽다. 남북으로 갈린 것도 슬픈데 동성애 찬반으로 또 나뉘어 생난리다. 동성애임을 밝힐 자유도, 동성애를 반대할 권리도 모두에게 있다. 다른 건 틀린 게 아닌 이상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면 안 될까. 셰익스피어가 500년 전 설파했듯, 이 세상은 수수께끼투성이고 인생은 사랑만 하기에도 짧다.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