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넘치는 돈 어떻게 해결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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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빠른 속도로 대외 개방을 추진했다. 특히 국내 금융 시장은 거의 완전 개방 상태에 이르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 자본의 국내 진출이 크게 늘어나 우리나라의 주요 기업이나 금융회사, 그리고 상당한 규모의 부동산이 외국인에게 매각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매각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경제 환경인 세계화 체제에 적응하기 위해 불가피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렇게 많은 자산을 외국인에게 매각하고 받은 자금을 어떻게 운용하고 있는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 매각 대금을 주로 국내 시장에서 투자하고 운용할 생각만 했지 외국인들처럼 글로벌 시장에 나가 운용할 생각을 못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했더라도 경험과 능력 부족으로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 결과 돈이 해외로 나가지 않아 우리 경제에 엄청난 과잉 유동성을 유발하게 됐다.

우리나라 통화 당국은 거액의 통화를 환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대규모 환수에도 불구하고 국내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유동성은 여전히 크게 남아돌고 있다.

여기에다 세계적 경기 불황이 계속되고 북한 핵 문제 등과 같은 대외 여건이 안 좋아 남아도는 돈은 기업 투자로 흘러들어가기보다 가계 대출이나 부동산 투자에 몰렸다.

외국인들은 세계 지도를 펴놓고 투자 대상을 결정하지만 내국인들은 좁은 국내 시장을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특히 부동산의 경우 특정지역의 아파트에 강한 집착을 보여 왔다.

이러한 내국인의 행태는 가지고 있던 부동산이나 자산을 외지인에게 팔고, 그 매각 대금으로 좁은 고향 땅에서 비생산적인 투기나 소비에 몰두하는 지방 원주민의 행태에 비유될 수 있다.

이러한 '우물안 개구리식' 행태는 바로 그간의 개방 체제가 주로 외국인들이 국내 시장에 진출하는 식으로 전개됐으며, 동전의 다른 한 면인 내국인의 외국 시장 진출은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경제의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인 과도한 가계 대출과 부동산 거품도 근원적으로는 쌍방 통행식 개방화가 아닌 반쪽 형태의 개방화 구조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처럼 외국인들이 국내 시장에 진출하는 것에 무게 중심을 둔 개방화는 우리와 같은 작은 나라의 경우 외국 자본의 유.출입에 너무 휘둘리게 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외국 자본의 유입이 많다 보면 어느 한 순간 여건이 바뀌어 외국 자본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큰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외환시장이 아직 제대로 발전되지 못한 우리나라에서는 외국 돈의 유.출입이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과 관계없이 급격한 환율 변화를 쉽게 유발해 수출 등 실물경제를 교란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제 거품과 교란의 위험이 많은 그간의 일방형 개방화에서 벗어나 보다 균형있는 상호 진출의 양방형 개방화를 적극 도모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기업이나 금융회사, 그리고 투자가들은 적극적으로 세계 시장 진출을 준비해야 하며, 정부는 이를 체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물론 좋은 외국 기업과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에 계속 활발하게 진출하도록 지원하는 일도 계속해야 한다.

그러나 만약 현재와 같은 불균형적인 개방화 구조가 개선되지 않고 지속된다면 아무리 강한 정부 대책이 강구되더라도 부동산 거품과 같은 자산 거품의 확대와 붕괴, 그리고 이에 따른 심각한 피해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각 경제 주체들이 넓은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시장에 활발하게 진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 경제 개혁의 기본 목표가 돼야 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관행적 변화를 꾀하는 것이 바로 그 개혁의 핵심 내용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하성근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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