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축구 스코어 맞아?' 11만 소국 미크로네시아의 굴욕

중앙일보

입력

0-38. 전·후반 90분동안 치러지는 축구 경기에서 한 팀이 일방적으로 38골을 넣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핸드볼이나 농구에서 나올 법 한 점수가 국제 대회 축구 경기에서 나왔다.

호주 공영방송 ABC는 '5일 파푸아뉴기니 포트 모르즈비에서 열린 퍼시픽게임 축구 조별리그 2차전에서 미크로네시아가 피지를 상대로 0-38로 패했다'고 6일(한국시간) 전했다. 미크로네시아는 피지에게 전반에만 21골을 내주고, 후반에 17골을 허용했다. 산술적으로 2~3분마다 한 골씩 내준 셈이다. 피지는 미크로네시아를 상대로 전반 10분 만에 6골을 몰아쳤다. 전반 24분부터 30분까지 6분동안 6골을 몰아넣어 순식간에 미크로네시아 수비진을 무장해제시켰다. 미크로네시아는 0-17로 뒤진 전반 추가 시간 4분동안에도 4골을 내주는 수모를 당했다.

호주 출신 스탠리 포스터 미크로네시아 감독은 대량 실점한 주전 골키퍼 월터 펜겔뷰와 팀 주장인 미드필더 도미니크 가다드의 포지션을 후반 초반 맞바꾸는 웃지 못할 모험도 감행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미크로네시아는 피지 공격수 안토니오 투이부나에게만 전·후반 통틀어 10골을 내줬다. 투이부나를 비롯해 피지 선수 5명이 해트트릭(3골)을 기록했다. 앞서 미크로네시아는 3일 열린 조별리그 1차전에서도 타히티에게 0-30으로 대패했다. 두 경기를 치러 한 골도 넣지 못하고, 무려 68골을 내줬다. 4년마다 남태평양 인근 24개국이 참가하는 종합 대회로 치러지는 퍼시픽게임에서 축구는 2016 리우올림픽 오세아니아지역 예선을 겸하고 있다.

필리핀 동쪽 서태평양에 있는 연방 공화국인 미크로네시아는 600개의 섬으로 이뤄진 인구 11만명의 작은 나라다. 1999년 6월 괌을 상대로 첫 A매치를 치렀던 미크로네시아는 변변한 훈련조차 제대로 못 하는 '축구 약소국'이다. 포스터 감독은 "선수들 중 다수가 축구를 하기 힘든 작은 마을 출신들이다. 실제 능력있는 선수들과 많은 관중 앞에서 시합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면서 "타히티와 1차전은 미크로네시아 선수들에게 진정한 충격을 안겼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미크로네시아 선수들은 당당했다. 포스터 감독은 많은 실점에도 경기 후 "타히티전 대패 충격에도 선수들은 곧바로 회복했다. 선수들을 격려하며 다독였다"면서 "전반보다 후반에 더 나은 경기를 했다"며 오히려 만족해했다. 반면 피지의 카를로스 부체티 감독은 38골 차 대승에도 "우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회를 얻었지만 놓친 게 많았다"고 말해 대조를 이뤘다. 경기 도중 미드필더에서 골키퍼로 뛴 가다드는 "(피지전 대패에) 혼란스럽다. 그래도 우리는 이제 축구를 시작했을 뿐이다. 다음 경기에선 적어도 한 골은 넣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미크로네시아는 7일 바누아투와 대회 조별리그 최종전을 치른다.

국제 경기 사상 최다 점수 차 경기였지만 공식 기록으로는 인정받지 못했다. ABC는 '미크로네시아가 국제축구연맹(FIFA) 가맹국이 아닌데다 23세 이하 팀 간에 치른 경기여서 최다 점수 차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국제 경기 최다 점수 차 공식 기록은 2001년 4월 열린 한·일월드컵 예선에서 호주가 아메리칸 사모아에 31-0으로 이긴 경기다.

김지한 기자 hansk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