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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는 투자자들의 유엔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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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경제학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한 찬반을 둘러싸고 엘리엇과 삼성 간에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의결자문회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가 엘리엇과 거의 같은 논리로 합병에 반대한다는 보고서를 지난 3일 내놨다. 상당수 국내외 언론은 ‘글로벌’ 또는 ‘가장 권위 있는’ 의결권 자문기구라는 등의 수식어를 붙여 이 보고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ISS의 실상을 보면 그렇게 권위를 부여할 기관이 전혀 아님을 알 수 있다. 투자자들의 유엔이 결정을 내린 듯이 호들갑 떨 일도 아니다.

 ISS는 원래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가 고객들에게 정보도 제공하고 관련업계에 영향력도 행사할 목적으로 만든 회사였다. 2014년 사모펀드인 베스타가 인수해서 운영하고 있다. 베스타는 투자은행인 퍼스트 보스턴의 차입매수팀 멤버들이 회사를 나와 1988년 만든 펀드다. 따라서 그 연원은 ‘기업사냥꾼’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사냥꾼들은 엘리엇과 같은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선구자다. 이들은 차입 등의 방법으로 대규모 자금을 동원해서 표적으로 삼은 회사의 대주주로 올라선 뒤 자산매각·분리·합병 등의 방법으로 이익을 취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사냥꾼 방식은 돈이 너무 많이 들고, 위험 부담도 컸다. 90년대 이후 등장한 새로운 행동주의 펀드들은 이런 방식 대신 소수주주로 기업에 참여한 뒤 이사회나 주총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필요하면 소송 등의 방법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이익을 얻은 뒤 물러나는 행태를 보여왔다.

 ISS 보고서를 보면 이러한 단기자본의 시각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ISS는 보유주식을 현물 배당할 수 있도록 정관을 고치라는 엘리엇의 제안에 찬성을 표시했다. 주주가치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과연 기업가치를 실제로 높이는 일인가? 주가가 계속 상승하려면 그 회사의 사업이 좋아져야 한다. 배당을 늘린다고 해서 사업이 좋아지지 않는다. 배당받는 주주들만 좋아질 뿐이다. 사업이 좋아지려면 중장기적인 시각이 있어야 한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에서 성공하기 위해 7년 동안 적자를 감수했다. ISS는 이런 사업에 대해 관심도, 지식도 없다.

 ISS 보고서는 주식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해 무지하든지, 아니면 크게 왜곡된 시각을 갖고 있다. ‘시장반응’이라는 항목에서 “합병이 아무런 프리미엄을 갖고 있지 않는데도 5월 26일 합병발표에 대해 대단히 긍정적이어서 삼성물산의 주가가 14.8% 올랐고, 제일모직의 주가가 15% 올랐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다 바보라는 말인가? 어떻게 합병 프리미엄이 없는데 그렇게 주가가 오르나? 아니면 삼성이 주가를 조작했다는 말인가? 조작했다면 어떻게 지금까지 한 달이 넘도록 당국과 투자자들이 눈을 부라리며 바라보고 있는데 계속 20%가량 상승한 수준에서 주가가 유지되는가?

 조금만 한국 주식시장에 대해 알고 있다면 주가가 오히려 프리미엄 때문에 올랐다는 사실을 적시했어야 한다. 에버랜드로부터 시작한 제일모직은 삼성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였고, 삼성물산과의 합병을 통해 이 체제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삼성물산은 자체적으로 주가가 갑자기 오를 재료가 없었다. 상사 부문은 원래 수익성이 낮았고 건설시장은 회복될 전망이 보이지 않았다. 흔히 ‘주식은 꿈을 먹고 자란다’고 한다. 과거 실적이나 자산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 것인지에 따라 주가가 올라간다. 그런데 삼성물산 자체로는 그런 꿈이 그려질 여지가 없었다.

 그렇지만 한국 최대 재벌의 사업지주회사가 되면 온갖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삼성그룹이 모든 역량을 동원해 이 회사가 잘되도록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삼성은 그동안 그룹의 역량을 동원해 새로운 사업에서 성공 신화를 이루어왔다.

 삼성전자 주가가 주당 130만원 수준인데 제일모직 주가가 20만원이 되지 않는다면 아직도 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삼성물산 주가가 15% 오른 것은 지주회사의 프리미엄에 편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판단을 내릴 때 해외기관의 평가나 ‘글로벌 스탠더드’ 등의 외부적 권위에 의존하는 경향이 너무 강한 것 같다. ISS의 결정이 이번 분쟁의 ‘분수령’이라고 보도한 언론도 있었다.

 물론 그들의 판단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용을 제대로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내 입장에서 내 주관을 갖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거나 대응할지 등을 판단해야 한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