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일본이나 한국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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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낮 12시15분 일본 도쿄의 국회의사당에서는 큰 박수가 일었다. 이른바 '유사(有事)법제'가 20여년의 논란 끝에 참의원에서 최종 통과됐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장관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고개 숙여 감사를 표시했다.

약 1시간쯤 뒤,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이 국빈자격으로 도쿄 하네다(羽田)공항에 도착했다. 이어 영빈관으로 이동한 盧대통령은 일왕과 고이즈미 총리의 영접을 받았다. 이 장면들은 TV로 생중계됐다.

일본은 어떻게 盧대통령을 손님으로 초대한 바로 그날 그 손님이 걱정하는 유사법제를 통과시킬 수 있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일본 정부와 시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한 유력 신문의 간부는 "며칠 전까지 일본 정치권은 유사법제 통과가 盧대통령 방문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난달 중의원에서 유사법제가 통과됐을 때 한국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었다"고 지적했다. 왜 엉뚱하게 지금와서 불쾌해 하느냐는 것이다.

일본은 상대방의 체면에 대한 배려를 중시한다. 유사 관련 3법은 '국내법'으로, 주변국에 결코 위협을 주지 않는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이 설령 맞다고 해도 법제의 통과 시기 정도는 조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국회 회기는 18일까지고, 여당에서는 회기 연장까지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도 문제다. 그동안 별 말 없다가 지난 4일 盧대통령이 "유사법제 우려"발언을 하고, 부랴부랴 이 문제를 이번 방일기간 중에 따지고들겠다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아마추어'적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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