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베를린 장벽 붕괴, 르완다 인종학살 … 세상을 뒤틀어 보는 만평의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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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세상을 향한 눈
장크리스토프 빅토르 지음
조홍식 옮김, 문학동네
292쪽, 2만2000원

만평가에게는 기자에게 없는 특권이 있다. 자신의 견해에 따라 뉴스 속 요소들을 재배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뉴스의 일부를 자유롭게 물어뜯고 고칠 수 있다”고 표현했다. 사실을 정확히 전달해야 하는 기자에 비해 만평가는 자유와 독립성을 누린다는 뜻이다. 그래서 신문 맨 뒷면의 만평에는 앞면과 다른 해방감이 있다.

9·11 테러 1주일 후,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실린 장 카뷔의 만평. ‘VENDEZ’는 ‘팔아’라는 뜻의 프랑스어. [그림 Cabu]

 책에는 1989~2012년 유럽·아시아·남미 등 신문·잡지에 실렸던 만평 중 250개가 선정돼 실렸다. 베를린 장벽 붕괴, 르완다 인종 학살, 홍콩 반환, 빌 클린턴 대통령 스캔들 등 첨예한 이슈가 만평가들의 손을 거쳤다. 같은 이슈를 가지고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각기 다른 그림이 탄생했다. 해학적이거나 도발적이고, 한 컷 안에 들어있어 효율적이다.

 프랑스 외무성에서 국제관계분석가로 활동했던 저자는 만평을 소개하며 특히 만평가 개인의 스토리에 주목했다. 이들이 어떤 인물이었으며 왜 이런 만평을 내놓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에 공을 들인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 ‘샤를리 에브도’에 실린 장 카뷔의 만평은 눈길을 끈다. 그는 2001년 9·11 테러를 다루며 뉴욕 세계무역센터 안에서 본 비행기를 그렸다. 그러나 건물 내 누구도 비행기를 쳐다보지 않는다. 컴퓨터에 고개를 틀어박고 돈 벌기에만 집중하고 있는 모습으로 피해자들을 그렸다. 만평은 당연히 논란에 휩싸였다. 이같은 비판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견해를 만평에 싣던 카뷔는 2015년 사망했다. 올 1월 파리 ‘샤를리 에브도’의 회의실이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게 공격받았을 때 희생자 중 한 명이었다. 책은 자유롭게 해석한다는 만평가의 특권이 한편 얼마나 치열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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