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조경환 통산 100호, 자존심 '다림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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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홈런은 야구의 꽃이다. SK 외야수 조경환(31·사진)이 그 꽃을 꼭 백번 따냈다.

조경환은 5일 대전 한화전에서 자신의 1백번째 홈런을 때렸다. 그것도 만루홈런이었다. 시즌 8호.

조경환은 9-6으로 앞선 4회초 1사 만루에서 왼쪽 담장을 넘기는 아치를 그려냈다. 기분을 낼 만도 했다. 그러나 정작 조경환 자신은 "이런 일로 자만하지 않겠다"며 다부지게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유가 있었다. 지난해 시즌 중반 롯데에서 SK로 트레이드된 조경환은 마음고생이 많았다. 낯선 새 보금자리보다도, '기량미달'을 이유로 친정팀에서 내팽개쳐진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한 시즌 평균 20개 홈런은 가능하다던 파워히터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었다. 지난해 SK에서 조경환은 28경기에 출장, 타율 0.218을 기록했다. 결국 벤치워머로 시즌을 끝냈다.

시범경기에서 만난 조경환은 앳된 얼굴로 지난해까지 '아기동자(童子)'로 불리던 그 조경환이 아니었다. 머리를 완전히 빡빡 밀어버렸다. 머리모양만 동자승이었을 뿐 구릿빛 얼굴과 터진 입술은 얼마나 겨울훈련을 철저히 했는지를 보여줬다. 지난해 97㎏이었던 몸무게도 90㎏이하로 떨어져 있었다. SK 김성래 타격코치는 "감량 덕에 스윙 스피드가 몰라보게 빨라졌다"고 말했다.

올해 출발은 좋았다. 시범경기에서 타율 0.475로 '타격왕'에 올랐다. 밀어치는 능력을 키워 속수무책이었던 바깥쪽 변화구에도 적응력을 높였다. 그러나 긴장의 끈을 늦췄던 때문이었을까. 정작 시즌 개막 이후 주춤해 4월 중순부터 선발 라인업에서 빠지기도 했다.

6월의 시작과 함께 조경환이 '작은 거인'으로 다시 한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4, 5일 연속 홈런포를 가동했다. 타율은 0.269로 높지 않지만 홈런만큼은 5일 현재 이호준(0.314.12개), 디아즈(0.320.10개)에 이어 팀내 랭킹 3위(8개)다.

최근 누군가 SK 조범현 감독에게 "번트 위주 작전이 많지 않으냐"고 질문하자 조감독은 "각팀 홈런수를 비교해 봐라"며 되받았다고 한다. SK 팀홈런은 5일 현재 53개로 삼성(83개).현대(67개)에 이어 3위다. 투.타의 안정감 속에 당당히 1위를 질주하는 SK 조감독의 자신감 속에는 조경환의 대포 방망이에 대한 믿음도 담겨 있다.

대전=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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