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찾으면서 왜 남의 기준에 맞출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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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엄정식

농경문화를 별안간 대체한 산업문화, 과도한 경쟁, 범죄의 증가, 도덕적 타락…. 엄정식(73)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그리스 아테네와 현대 한국의 유사성으로 보는 점들이다. 엄 교수는 “갑자기 부자가 된 것, 집단적으로 안게 된 정신적 문제 등에서 우리 사회는 고대 아테네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가 현재를 ‘격동의 시대’로 정의한 이유다. 시대 인식은 최근 낸 『격동의 시대와 자아의 인식』(세창출판사)의 전제가 됐다.

 소크라테스는 바로 이러한 때에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엄 교수는 “많이 알려져 있는 말이지만 전거가 약하고 설명이 부족해 뜻을 이해하기 힘들다”며 “하지만 당시 아테네와 비슷한 현재 우리의 상황에 비춰 철학적으로 해석해보면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세계 문화사에서 유례가 없는 격랑의 시대에는 자아를 인식하는 것이 가장 먼저다”라고 했다. 소크라테스의 현대적 해석이다.

 자아 인식의 방법은 뭘까. “이런 시대에는 많은 이가 행복을 찾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이 바라는 행복은 차라리 쾌락에 가깝다. 언제나 남의 기준에 맞춰 행복을 설정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그 다음으로 자기 능력을 알고, 의무 또한 깨달아야 한다.

 엄 교수는 욕구·능력·의무를 ‘자아의 삼각형’이라고 했다. “스스로를 크고 멋있는 삼각형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작더라도 잘 여며진 삼각형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행복은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엄 교수가 소크라테스뿐 아니라 니체·헤겔·푸코를 끌어들여 도달한 결론이다.

 책은 2010년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한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에서 엄 교수가 강의한 내용이다. 엄 교수는 언어분석철학 전공이다. 하지만 이 강좌와 책에서만큼은 지금껏 접하고 영향 받은 동서양 철학을 집대성해 일반인이 공감할 만한 결론을 내렸다. 당시 강좌에는 문학·자연과학·종교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강의를 듣고 함께 토론했다. 엄 교수는 “일반대중도 들을 수 있는 강연이었지만 나에게는 가장 어려운 강의였다”며 “책 또한 생애 마지막으로 내는 책이라 생각하고 이 땅에서 철학도로 사는 의미를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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