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최루탄과 공권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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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2월 미국 서북부 도시 시애틀이 매캐한 최루가스로 뒤덮였다. 전세계와 미국 전역에서 모여든 5만여 반(反)지구화 시위대를 미국 경찰이 강제 해산시킨 것이다.

2000년 9월 체코 프라하에서, 2001년 4월 캐나다 퀘벡에서, 같은 해 7월 이탈리아 제노바에서도 국제회담을 반대하는 시위에 유럽 경찰들은 어김없이 최루탄을 쐈다.

우리에게도 최루탄은 낯선 물건이 아니다. 아니 10여년쯤 전엔 아마도 누구보다 최루가스에 눈물 흘리며 고생한 사람들이 우리 국민이다. 그때 최루탄은 민주화 시위를 깨부수는 군사정권의 상징물이었다. 87년 최루탄 파편을 머리에 맞아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씨에 대한 기억도 생생하다.

"과격 폭력시위 때 최루탄 사용 검토"라는 최기문 경찰청장의 말이 본지에 보도된 5일 인터넷 사이트들은 그래선지 찬반 논란으로 뜨거웠다. '군사독재 시절로 돌아가자는 거냐'는 의견들은 여전했다. 하지만 더 눈에 띈 건 '더이상 무법시위를 방치하면 안된다''공권력 권위를 세우라'는 찬성론들이었다. 지난 '국민의 정부'집권기간 중 지켜온 '무(無)최루탄 원칙'에 대한 비판의 소리로 들린다.

진압경찰들이 쇠파이프에 두들겨맞아 팔다리가 부러지면서도, 폴리스 라인에 선 여경(女警)들이 시위대가 던진 달걀에 얼굴을 맞으면서도 지켜야만 했던 '원칙'이었다.

문제는 그러면서 덩달아 땅에 떨어진 공권력의 권위와 체통이다. 취객이나 동네 폭력배들의 난동으로 난장판이 되는 요즘 밤 파출소의 모습은 어떻게 할건가.

최루탄 사용은 안하는 게 좋다. 하지만 공권력이 얕잡히고, 다른 시민들의 불편과 희생을 강요해 가면서까지 그래야 하는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유사시 총까지 쏠 수 있도록 한 경찰에게 "최루탄만은 안된다"는 건 아무래도 불합리 아닌가.

윤창희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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