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프로] "어, 우리말 공부도 재미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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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아무리 몸에 좋은 약도 입에 쓰면 삼키기 힘들다. 그래서 약의 표면에 단 것을 발라 먹기 좋게 만드는 편법을 쓰기도 한다.

SBS가 지난 5월 개편으로 선보인 '사랑해요 우리말'(연출 이석진.매주 토.일요일 오후 4시 55분)'은 이런 당의정(糖衣錠) 같은 프로그램이다. 아나운서들이 나서 올바른 우리말 사용법을 알려주는 것은 다른 방송사의 우리말 교육 프로그램과 같지만 전달 방식이 확연히 다르다. 드라마나 CF,영화의 주요 장면을 패러디해 아나운서들이 직접 연기를 하며 우리말 사용법을 일깨우는 방식이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도 시청자들이 외면하면 소용없잖아요. 재미와 정보를 함께 줄 수 있는 형식으론 패러디가 '딱이다' 싶었죠." 이 프로그램의 산파 역할을 한 SBS 아나운서실 윤영미 우리말 가꾸기팀장의 설명이다. 때문에 2분 짜리 한 편을 찍기 위해 SBS아나운서들은 평소의 반듯한 이미지를 포기한 채 분장을 하고 뜨거운 조명아래서 몇 시간씩 땀을 흘리면서도 기꺼워 한다.

우리말 교육 프로그램이 재미있으면 얼마나 재밌을까, 또 아나운서들이 연기를 하면 얼마나 잘 할까 딴죽을 걸고싶은 사람이라면 일단 한번 보고나서 해도 늦지 않을 듯 하다. 예컨대 지난달 방송분 총 7회(5월17일분은 쉼) 중 '미워도 다시 한번'편을 보자.

느끼한 중년 남성과 내숭덩어리 아가씨로 분한 배기완.이현경 아나운서가 공원을 거닐며 데이트를 하다 낯간지러운 대사를 읊조린다.'남:현경을 위해서라면 저 하늘에 태양도 따다 안겨줄 수 있어. 여:아이, 자기는 거짓말장이'. 여기서 바로 "'장이'는 손으로 물건을 만들거나 고치는 전문인을,'쟁이'는 어떤 일을 습관적으로 잘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란 설명이 뒤따른다. 거짓말장이가 아니라 거짓말쟁이가 옳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 애꿎은 영화 '미워도 다시한번'을 패러디한 것이다.

편성도 파격적이다. 오락 프로그램들이 판치는 주말 황금시간대에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시청자에게 가까이 다가서겠다는 의도에서다. 2분에 불과하지만 주말뉴스와 본격적인 오락 프로그램 사이에 방영된다.

이같이 획기적인 형식과 편성에 힘입어 '사랑해요 우리말'은 벌써 평균 6~7%대의 시청률을 자랑한다. 교양 프로그램에다, 극히 짧은 방영시간을 고려하면 기대 밖의 호응이라는 게 방송사 관계자들의 평가다. '사랑해요 우리말'이 앞으로 시청률과 공익성이란 두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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