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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신기후체제 출범과 한국의 기후 리더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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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그린코리아21포럼 이사장

가뭄이 두려웠다. ‘기후변화 시나리오’가 막을 올린 것 같아서다. “북극지방의 기온 상승은 2~3배 빠르다, 빙하가 녹는다, 열팽창으로 해수면이 상승한다, 해수 담수화로 난류·한류의 열염순환(熱鹽循環)이 교란된다, 북극 한파를 차단하는 제트기류가 약화돼 냉기가 하강하고 수증기 순환이 교란된다, 그 결과 지구촌 곳곳에서 가뭄·홍수·폭설·폭염·혹한 등 재난 시리즈로 고통을 겪는다, 2030년 무렵 식량부족·물부족·유가변동의 최악 폭풍(perfect storm)에 직면하고 기후변화와 대량 난민 사태의 복합으로 대격변을 겪게 될 것이다.”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2014년 제5차 보고서에서 인간활동이 기후변화의 주원인일 확률이 95% 이상으로 지극히 높다(extremely likely)고 했다. 딴 얘기 같지만 올해 10월 초 IPCC 의장 선거가 있다. 현 IPCC 부의장인 이회성 박사가 10여 년 동안 IPCC에서 기여한 경륜으로 후보에 올라 있다.

 기후변화당사국총회는 우여곡절 끝에 올해 말 파리 총회에서 포스트-2020 신기후체제를 출범시킨다. 196개(유럽연합 포함) 당사국은 9월까지 온실가스 감축 기여 방안 INDC(Intended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를 제출해야 한다.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40~50% 감축이 목표다. 국가별 여건을 고려하되 국가 책임과 능력에 비추어 의욕적이고 공정해야 한다. 저탄소 경제성장 액션 플랜도 제출하고 기후변화 적응, 재정 지원, 기술 등에 대한 평가도 받아야 한다.

 두 주 전 정부는 네 개 시나리오를 내놓고 공론화에 들어갔다. 한데 목표가 모두 2009년 코펜하겐 발표 때보다 낮았다. 산업계는 “1안도 과하다”, 환경단체는 “4안도 약하다”고 부딪쳤다. 산업계는 호소한다. “세계 4위 경쟁력의 우리 제조업(31%)은 중후장대(重厚長大)인데 과도한 규제를 한다면 산업공동화가 초래될 것이다, 주요산업(철강·석유화학·정유·반도체)은 에너지 효율이 최고 수준에 달하고 있어 탄소규제는 ‘마른 수건 짜기’다, 2020년 전망치 대비 30% 감축은 이미 불가능 상태니 재산정하는 게 맞다, 감축수단인 이산화탄소 포집저장기술·재생에너지원·원전 계획 등은 목표를 한참 밑돌고 있다, 이상과 구호보다 현실이 중요하지 않은가.”

 이에 맞서는 주장은 이렇다. “2014년 리마 총회는 감축목표 ‘후퇴금지의 원칙(No Backsliding)’에 합의했다, 지난해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제출한 국가보고서에서도 2009년 계획을 재확인했다, 선진국-개도국의 가교 역할을 자임하며 녹색기후기금 사무국도 유치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후정상회의·G20회의에서 기후변화는 위기지만 기회로 인식해야 한다며 2020년 감축목표를 확인했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15위(2014년) 국가로 온실가스 배출(1990~2012년) 증가율(33%)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1위,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7위다, INDC 산출에서 개도국용의 BAU(Business As Usual) 방식을 택한 것도 그렇고 GDP·전력수요 전망치도 논란거리다, 줄곧 내세웠던 목표에서 후퇴한다면 국제적 신뢰가 실추될 것이다.”

 양측의 주장은 실리 대 명분의 대립으로 읽힌다. 이런 논리 대결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두 가지를 조화시키는 게 솔루션인데, 감축정책과 기술수단의 불확실성이 걸림돌이다. 이미 제정한 법적 기반도 흔들리고 있다. 산업 부문에 대해서는 전반적인 규제 혁신으로 인센티브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 결국 경제와 기후 사이의 탈(脫)동조화(decoupling)가 관건이다. 그러려면 기후변화 정책과 에너지 정책이 융합돼야 한다.

 INDC는 국제 협상이다. 그런데 한국은 일개 개도국이 아니다. 선진국·개도국을 아울러야 하는 신기후체제 구도의 중심에 서 있다. 조속히 배출의 정점을 찍고 하향세로 돌아서는 본보기를 보여야 할 처지다. 그러나 ‘오지 않은 미래’에 대비해 불확실한 변수들의 감축 방정식을 만들고 실행에 옮기는 게 쉬울 리 없다. 그럼에도 가야 할 운명(?)이라면 정책 시그널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최근의 INDC 토론회는 산업계 대 시민단체 진영의 맞짱토론을 방불케 했다. 우리네 가족의 일터인 산업 현장이 온실가스 감축을 도맡는 듯한 논의구조는 거북스럽다. 공정치도 않다. 전력·수송·건물·공공·가정·상업 등 모든 부문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시민단체의 활약이 돋보일 비즈니스다. ‘모든 경제주체의 참여’라는 프레임을 기치로 온 국민이 자원 이용 효율화를 극대화하는 민관 일체의 기후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역사적 시점’이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그린코리아21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