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한국 박물관사의 증인"|타계한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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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국미 탐구에 한평생을 바친 근대 한국 박물관사의 증인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이 70세 가까운 세수를 마름했다.
오수 최순우관장은 몇해전 한 신문대담에서『지난 일생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박물관은 「나의 무덤」이라고 생각해요』라고 했다.
박물관에 대한 그의 집념은 6·25와 l·4후퇴의 포연속에서도 생명을 걸고 문화재들을 피난 수도 부산으로 옮긴 일화에서 잘 나타났다.
이 같은 오수의 문화재를 향한 정열은 이제 하나의 전설이 됐다.
송도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오수는 몇해동안 호수돈여학교 강사로 재직하다가 당시 개성박물관장 우현 고유섭선생의 권유를 따라 박물관에 들어갔다.
한국 미술사의 개척자인 우현으로부터 고미술연구 지도를 받은 그는 45년 조국 광복과 함께 국립박물관에 들어가 삼사 학예원 박물감 학예관 미술과장 학예연구실장을 거쳐 관장이 됐다. 박물관 역사와 함께 한 그의 생애는 문화재 위원으로, 이대·서울대·고대·홍익대등에 강사로서 한국 문화재의 미적 가치를 새삼일깨우는데도 큰 공헌을 했다.
그는 문화재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을 일깨우기 위해 중앙박물관장에 취임한후「박물관대학」을 개설, 고미술의 인식기반을 크게 넓혀주기도 했다.
80년 청자·백자연구를 에세이 형식으로 엮은『한국의미-한국의 마음』을 펴내기도 했다이책은 한국 도자연구의 명저로 손꼽힌다.
오수는 한국미의 해외 홍보에도 정열적인 노력을 경주하면서『한국미술 5천년전』의 일본·미국·유럽 전시를 추진,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의 타계는 고유섭의 제자로 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진홍섭(문화재위원)·황수영박사(동국대총장)등「개성3걸」중의 첫 퇴장이라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을 갖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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