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제81화30년대의 문화계(12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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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이당과 묵노는 어떻게 된 까닭인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당은 술도 안 마시지만 신문사 망년회 같은데 다른 화가들은 다나오는데 그는 한번도 나온 일이 없었다. 그럴 때면 묵노는 여러사람 있는 데서 이당을 터놓고 욕하였다.
『이당, 제가 무어야. 일본놈식의 미인도나 그리면서 잘난체 한단말야!』
그러면 이런 소리가 이당의 귀에 안 들어갈리가 없었다. 점잖은 이당도 지지 않고『아, 묵노놈 보게나. 내가 처음 서화미술회에 들어갔을 때 보니까 열대여섯살짜리 애송이 녀석이 개구멍바지를 겨우 면한 누비바지를 입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먹장난만 치던 놈이 무엇이 어쨌다는거야!』하면서 문제도 안된다는 말투로 응수하는 것이었다.
묵노는 늘 말이, 저는 오원 장승업이라고 하면서 이당의 세필파는 반대로 종이 위에 먹물이 뚝둑 떨어지는 생동감 있는 그림이 참 그림이지, 이당의 그림이 그게 그림이냐고 하였다. 이런 묵노의 그림을 보고 『과연 금세 오원이로군!』하고 육당 최남선이 칭찬한 일이 있어서 묵노는 『육당선생은 그림을 볼줄 아신단말야!』하고 탄복한 일이 있었다.
어느해 정월에 우리들이 육당댁으로 세배갔을 때 일이다. 월탄집 가는 길인 효제동에 있는 육당집은 옛날 술도가로 광이 많았다. 이 많은 광은 술독을 넣어 두는 창고였는데 육당은 거기다가 책을 넣어 두었다.
육당은 넓은 안방을 서재겸 응접실로 쓰고 있어서 그방에서 원고를 쓰고 손님을 접대하고 있었다. 육당은 묵노가 조르는 바람에 겸재의 산수화, 혜원의 풍속화, 그리고 우봉 조희룡의 매화그림을 내보였다 묵노는 열심히 그 그림들을 보고 있더니 별안간 무슨 생각을 했던지 『선생님, 저기다가 제가 매화를 그리겠읍니다. 괜찮죠?』하고 육당이 앉아있는 등뒤의 다락문을 가리켰다.
다락문은 네쪽의 기다란 문으로 되었는데, 아무 것도 그린 것이 없는 흰종이 문짝이었다. 이 네개의 문짝에다 매화 그림을 그리겠다는 것이었다.
『좋아, 그려보시오. 어디 묵노 솜씨를 봅시다.』
이래서 벼루·먹·붓 준비를 해가지고 묵노는 웃통을 벗고 약간 상기된 얼굴로 큰붓에 먹을 꾹꾹 찍어 날 듯이 일필휘지로 늙은 매화나무를 그려 갔다. 머리 속에서 미리 구상된것 같이 거침없이 붓을 놀려가는데 우리들은 놀라움으로 묵노의 이 무엇에 씐것 같은 운필을 바라보았다.
얼마 안가 늙은 매화나무에 송이송이 매화꽃이 핀 그림이 완성되어 네쪽의 문짝을 채우고 넓은 방안을 환히 빛나게 만들었다. 묵노는 앞에서, 또 뒤로 물러나 그림을 보면서 몇군데 붓을 대더니 마침내 붓을 놓고 『다 되었읍니다』하고 육당한테 꾸벅 절을 하였다.
육당은 앞으로 와서 한참 매화그림을 바라보더니 무릎읕 탁 치면서『허허, 묵노는 금세 오이로군!』하고 최대급의 찬사를 발하였다.
『신운이 도는데! 놀라운 재기야!』하면서 육당은 연거푸 칭찬하였다.
묵노는 이 일이 있은 뒤 술자리에서 『금세 오원! 그렇지. 나로 말하면 오늘날의 오원 장승업이란 말야! 안목이 높으신 육당께서 그렇게 지어 주셨으니 누가 뭐라해도 나는 당대의 오원이거든!』
이 일이 있은 뒤 묵노는 술이 들어가면 기고만장으로 「금세 오원」을 내세웠다.
묵노는 이런 친진난만한 점도 있는 사랑스런 장난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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