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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60만 년 된 박테리아도 있는데 인간에게 시간이란 무엇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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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위대한 생존
레이첼 서스만 지음, 김승진 옮김
윌북, 300쪽, 2만5000원

이들 사이에서 2000살이면 너무 젊은 나이다. 적어도 1만 살은 돼야 웬만큼 오래 산 축에 낀다. 최고령은 러시아 시베리아에 사는 박테리아, 방선균이다. 40만~60만 년 동안 생명 활동을 중단한 적 없이 살아왔다. 현재까지 인간이 발견한 최고령 생물이다.

 장수의 비결은 환경이 아니었다. 시베리아만 해도 그렇다. 2005년 과학자들이 이 지역을 조사한 것은 척박한 땅이었기 때문이다. 외계 행성에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을 조사하기 위해 시베리아, 캐나다 북부, 남극의 생물을 살펴봤다. 그 과정에서 방선균을 발견했다. 방선균은 영하의 온도에서도 DNA를 복구하며 40만 년 이상 천천히 생장하고 있었다.

 장수는 쉽지 않았다. 호주의 너도밤나무(6000~1만2000살)는 적합한 기후를 찾아 한 뿌리씩 이동했다. 원래 남극 출신이었지만 호주 퀸즈랜드까지 왔다.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웰위치아(2000살)는 사막에서 수분을 아끼기 위해 평생 잎을 두 장만 키운다.

 인간이 보기에는 약점 같지만 그 때문에 살아남은 경우도 많았다. 그리스 크레타 섬의 올리브 나무(3000살), 미국 플로리다의 상원의원 나무(3500살), 칠레 파타고니아의 알레르세 나무(2200살)는 속이 비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쓸모없다고 생각한 인간이 베지 않았던 덕분이다.

 현대 예술가인 저자는 10년 동안 장수 생물을 찾아 세계를 누볐다. 나무뿐 아니라 이끼·박테리아·버섯·해초 등을 발견하고 사진 찍었다. 과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이들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하나의 여행기다. 또 오래된 생물들이 간직한 이야기는 하나의 자연사다.

 그러나 이 책은 무엇보다 시간에 관한 에세이다. 수만 년 살아온 생물 앞에서 우리의 시간 감각은 달라진다. 몇 가지 질문을 하게 된다. 지구의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인류는 어떤 존재인가, 우리가 오늘 보내고 있는 시간의 의미는 무엇인가, 생물종마다 다른 시간은 어떻게 환산할 수 있을까. 저자는 “예술가로서 내 역할은 답을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질문들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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