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클리닉] 전문가의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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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자녀가 남의 물건을 훔쳤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부인이 얼마나 놀라고 당황하셨을지는 짐작이 갑니다. 절망감과 실망으로 숨을 쉬고 잠을 자기도 힘드셨을 것입니다. 이런 일로 정신과를 찾은 경우 자녀보다 부모의 비통한 마음을 달래는 것이 오히려 더 힘이 듭니다.

딸은 물건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관심과 사랑을 동생이 더 받고 있는 것으로 비칠 때 자신도 사랑을 받기 위해서 뭔가를 하게 됩니다.

딸은 부모의 관심과 걱정을 모두 받을 수 있는 행동으로 도벽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관심을 못 받기보다는 부정적인 관심이라도 받고 싶었던 것이죠. 반복적으로 부모의 지갑과 돈을 노렸던 것을 보면 자신의 행동이 발각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딸의 도벽은 정신과에선 행동장애라고 부르죠. 이 경우 잘못된 행동에만 초점을 맞춰 혼을 내고 벌을 주면 병이 치유되지 않습니다. 딸과 대화해도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일단 대화에서 도벽 얘기는 뒤로 미뤄 두세요. 딸에게도 예민한 부분이므로 대놓고 혼내서 고치려고 하기보다는 대화가 잘 되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딸과 얘기를 나누는 도중 말이 잘 막히고 서로에게 화를 자주 내는 것은 도벽이란 잘못된 행동에만 신경이 쓰여서 그렇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일상적인 얘기나 딸아이의 다른 관심사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딸에게 "너를 신뢰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인내심을 갖고 보여줘야 합니다.

또 딸에게 잠깐 동안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쏟았다고 해서 방심해선 안됩니다. 딸은 자신이 오랫동안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인의 사랑을 계속 테스트할지도 모릅니다. 단기간에 모든 문제가 풀리리라고 쉽게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그렇다고 이 기간에 딸이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무조건 면제해서는 안됩니다. 학교나 가정생활에서 지켜야 할 것은 꼭 지키도록 격려하고 정상생활로 돌아가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자기 할 일은 스스로가 말로 약속하고 지키게 하십시오.

육기환 포천중문의대 분당차병원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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