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클리닉] 아들 편애에 도벽 생긴 아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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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중학생 딸과 초등학생 아들을 둔 40대 초반의 주부입니다. 아무래도 아들이 어리다 보니 자연스레 관심과 신경이 더 써지는 게 사실이었어요. 그동안 딸애는 알게 모르게 동생에게 패배의식과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나 봅니다. 부모가 동생만 예뻐하고 자신한테 관심이 없다는거지요.

나름대로 부모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인지 도벽(盜癖)이 생겼습니다.

2년 전에 딸의 담임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학교에 찾아오라는 거지요. 처음엔 학업성적이 좋지 않아서 상담을 하시려나 보다 했습니다. 그러나 직접 만나서 설명을 듣자 말문이 막히더군요. 체육시간에 운동장에서 수업 받는 사이 교실에서 한 학생의 지갑이 없어졌답니다. 알고 보니 그 지갑을 우리 애가 훔쳤다는 겁니다. 넉넉하게 용돈을 줬는데 돈을 훔치다니요.

딸이 남의 물건에 손을 댄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어요. 집에서도 여러 차례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하루는 시장을 다녀오다가 딸애가 수퍼마켓 앞에서 과자.아이스크림을 양손에 가득 들고 동네 아이들과 함께 먹고 있는 걸 봤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라서 용돈은 아주 조금만 줄 때였습니다. 그 많은 과자를 살 돈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죠.

그래서 수퍼마켓 주인한테 물어봤더니 "돈을 내고 사먹었다. 이런 일이 가끔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대체 어디서 돈이 생겼을까? 아이를 붙잡고 다그쳤더니 글쎄 엄마 옷에서 돈을 꺼냈다는 겁니다. 그때는 처음이고 아직 어렸기 때문에 달랬지요.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혼난다"라고 말로만 혼내는 정도로 끝냈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상담한 후 딸을 붙잡고 대화를 했어요. "대체 왜 남의 돈을 훔쳤느냐. 엄마가 돈을 부족하게 준 거냐?"

딸에게서 뜻밖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엄마는 나한테 관심도 없으면서, 늘 동생만 신경 쓰고 예뻐하잖아"라고 대꾸했어요.

그때부터 저는 "부모의 본분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하고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 뒤로 우리 부부는 각별히 딸에게 신경을 썼고 그후 도벽이 사라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잠시 주의를 덜 기울였더니 나쁜 버릇이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요즘은 부모와 딸 간에 믿음이 없어지고 있지요. 며칠 전에는 화장대 서랍에 넣어 둔 돈이 없어졌기에 딸을 의심했습니다. 아이는 울면서 자기가 안 가져갔다고 하더군요. 저는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회초리를 들며 혼을 냈습니다.

그 때 남편이 들어오더라고요. 무슨 일이냐고 묻더니, 자기가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순간 얼마나 당황스럽고 마음이 아프던지요. 딸 앞에서 울고 말았어요. 자식의 말을 믿을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 참담했습니다.

딸에게 많은 걸 바라지 않습니다. "공부 못해도 좋으니 나쁜 습관 고치고 착하게 지내줬으면 좋겠다". 울면서 부탁한 적도 한두번이 아닙니다. 날이 갈수록 아이와의 사이가 멀어지고 어색해지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신뢰가 무너지고 사랑이 금이 가니,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부산에서 선주 엄마가 (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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