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모르는 장기 금리…가계대출땐 변동금리가 유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7면

지난 3일 재정경제부가 실시한 1조원의 5년 만기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입찰에 21개 기관이 2조3천6백억원어치를 응찰했다.

이에 앞서 2일 한국은행이 실시한 5천억원의 3년 만기 국고채 입찰에는 입찰 규모의 3배인 1조4천7백억원의 자금이 몰렸다.

이처럼 국채 등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채권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장기 금리의 기준이 되는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연일 사상 최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이처럼 실세 금리가 하락하면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낮아져 투자가 활성화되는 등 침체된 경기가 살아날 수도 있다. 그러나 돈이 기업이나 주식시장으로 흘러가지 않고 떠돌아다녀 경제의 짐이 되고 있다.

특히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제외한 실질금리가 0에 근접하거나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있어 이자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들은 어려움이 커질 전망이다.

◇장기 금리 3%대 시간문제=올 들어 4% 중반을 유지해 오던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3월 11일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사건이 터진 후 5.24%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이후 하락세로 돌아선 뒤 지난달 한국은행의 콜금리 인하 이후 하락 속도가 빨라졌다. 금리가 3%대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시티그룹 글로벌마켓증권은 경기 둔화를 막기 위해 한국 정부가 감세를 포함한 추가 재정정책을 시행하고, 수개월 내 콜금리를 0.25%포인트 추가로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콜금리를 내리면 장기 금리도 함께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바클레이즈캐피탈은 '주간 아시아 투자전략'보고서에서 콜금리를 0.25%포인트 추가로 내리면 연말께 실세 금리가 3.9%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 함께 3월 중순 이후 채권시장의 마비 현상이 계속되는 것도 금리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대한투신운용 황재홍 채권투자전략팀장은 "국채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늘고 카드채를 포함한 회사채는 거래가 잘 안 이뤄지는 채권시장의 양극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며 "마땅한 투자처가 없기 때문에 국고채 금리는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투자 안 늘고 부동자금 늘어=한국은행은 금리가 떨어지면 기업의 조달비용이 낮아져 투자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경제의 불확실성이 늘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아직 투자를 늘릴 엄두를 못내고 있다. 또 지난해 상당수 대기업이 사상 최대의 흑자를 내면서 유보자금을 많이 비축해 둔 상태여서 자금조달의 필요성이 많이 줄었다.

반면 중견.중소기업들은 금리가 내려도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살림살이가 어려워진 은행들이 대출심사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한 데다 채권시장이 여의치 않아 회사채나 기업어음(CP)발행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또 금리 하락으로 3백80조원으로 추정되는 시중 부동자금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커졌다. 이에 따라 부동산 시장이 불안하고 정작 증시로는 자금이 소폭 들어오는 데 그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 전무는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 국공채 등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는 늘게 된다"며 "이렇게 되면 금리는 더 낮아질 수밖에 없고, 부동자금이 늘어 수익률을 따라 돈이 몰려다니는 최근의 현상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가계 대출자에 도움=금리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은행에서 주택담보 대출을 받을 때 기준이 되는 3개월 만기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대출이자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앞으로 금리가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확정금리로 대출을 받았다면 변동금리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반면 금리가 내리면서 예금 이자가 줄어 이자를 타 생활하는 사람들은 갈수록 어려움이 예상된다.

정부가 기대하는 대로 시중자금이 증시로 유입된다면 주식시장에 기대를 걸어볼 수도 있다.

실제로 증권업계에선 풍부한 자금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는 유동성 장세가 나올 것이란 의견이 늘고 있다. 동원증권 관계자는 "이자.배당소득세가 면제되는 비과세 장기주식형 펀드에 가입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