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수학] 자연의 디자인 능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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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3면

미국의 건축가 리처드 벅민스터 풀러(1895~1983)는 1940년대에 '지오데식 돔'이란 구조물을 고안해 건축계에 이름을 떨쳤다.

지오데식 돔은 삼각형 면들을 이리저리 연결해 동그란 공같은 모양으로 만든 것(사진). 특징은 적은 재료만 갖고도 큰 공간을, 그것도 아주 튼튼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자연은 풀러보다 앞서 이런 모양을 디자인했다. 지오데식 돔이 등장한 이후에 몹시 작은 것도 볼 수 있는 '전자현미경'이 등장했는데,이를 갖고 바이러스를 관찰하던 생물학자들은 꽤 많은 바이러스 종류의 겉껍질이 지오데식 돔 모양인 것을 알게 됐다.

사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이런 모양이 적은 양의 단백질로 튼튼하고 안이 넓은 껍질을 만들어,그 안에 많은 양의 유전자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으니 바이러스로서 선호할 만한 것이다.

자연은 이처럼 사람에 앞서 여러가지 기하학적인 모양을 고안했다.

그 예를 신경세포인 뉴런에 있는 '클래스린'이라는 단백질에서도 볼 수 있다. 클래스린의 구조는 '정삼각형 20개로 이뤄진 정20면체의 각 꼭지점 주변을 편평하게 잘라낸 것'이다. 이 설명으로는 상상이 잘 안가겠지만,결과는 정육각형이 20개,정오각형이 12개인 32면체에 꼭지점이 60개인 도형이다.

'정육각형+정오각형'에서 뭔가 떠올렸다면 대단히 수학적 감각이 뛰어난 독자다. 그렇다. 바로 축구공 모양이다.

정육각형과 정오각형으로 이뤄진 축구공은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 처음 등장했다. 그 전의 축구공은 이상하게 찌그러진 육각형과 팔각형 등을 이어 붙인 모양이었는데 울퉁불퉁해 '공은 둥글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였다.

축구공과 같은 형태는 클래스린 말고도 또 있다.탄소 원자 60개로 이뤄진 C60의 분자다. C60은 축구공의 60개 꼭지점 위치에 탄소 원자가 하나씩 자리한 모양이어서, 별명이 'bucky ball(축구공)'이다.

축구공이 많은 발길질에도 끄덕 없듯이 C60도 대단히 높은 온도와 압력을 견딜 수 있다. C60을 발견한 화학자들은 그 공로로 96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C60은 '풀러린'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기도 하다.풀러가 디자인 한 지오데식 돔과 C60의 모양이 비슷하다고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그러나 엄밀히 말해 풀러린은 삼각형만으로 이뤄진 지오데식 돔과는 다르고, 축구공과 똑같이 생겼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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