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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 해외 서점가] 일본의 외교안보전문가, “진주만 공격,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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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일·미 개전의 정체
마고사키 우케루 지음
일본쇼덴샤(祥?社)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아침, 미국 하와이주 오아후 섬 진주만. 미군 병사들은 평소처럼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있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했다. 갑자기 레이더에 비행물체가 잡혔다. 감시 임무를 맡고 있던 두 명의 병사는 지휘관에게 보고했다. 미 본토에서 날아오는 B-17 폭격기 편대라고 판단한 중위는 이를 무시했다. 태평양전쟁은 미국의 방심을 틈탄 일본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됐다.

6척의 일본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345대의 전투기가 미 해군 태평양함대 사령부이자 육군 항공대 기지인 진주만을 공격했다. 2403명의 미군이 숨졌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날을 ‘치욕의 날’로 표현하며 일본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전술적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일본 제국의 패망을 재촉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마고사키 우케루(孫崎享) 일본 동아시아공동체연구소장은 지난달 펴낸 『일·미 개전의 정체』에서 ‘왜 일본은 진주만 공격이란 길을 갔을까’란 물음을 던진다. 그는 머리말에 “역사에는 다양한 ‘If(만일)’가 있을 수 있다”며 “여러 가지 선택지와 다른 길도 있었는데 일본은 왜 진주만 공격이란 어리석은 길을 선택했는지 생각하고자 한다”고 썼다. 저자는 당시 미·일 전쟁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고 봤다. 역사에서 ‘만일’이란 가정은 부질없는 일이지만 종전 70주년을 맞아 미국과 일본이 안보 동맹을 한층 강화한 시점에 이 책은 일본 군국주의의 무모함과 해악을 되돌아보게 한다.

마고사키 소장은 1943년생으로 도쿄대 법학부를 중퇴한 뒤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외무성 국제정보국장, 방위대학교 교수를 거친 외교안보 전문가다. 그는 2013년 발간한 『일본을 의심하는 뉴스의 논점』에선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과 일본 보수 언론이 한통속이 돼 우경화로 치닫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4월 문부성 검정을 통과한 중학교 교과서의 ‘독도 도발’에 대해서는 “어려울 때 외부에서 적(敵)을 만드는 건 정치에서 활용하는 수법”이라고 지적했다.

도쿄=이정헌 특파원 jhleeh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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