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2) 정서와 알레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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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P할머니는 겨울철 감기만 들면 「쌕쌕」 숨소리가 거칠어지면서 약간의 호흡곤란을 느끼곤 했으나 일상생활에는 큰 불편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전 금슬이 좋았던 남편을 사별한 이후로 천식증상이 악화돼 매일밤 호흡곤란으로 밤을 지새우게 되었고 입원치료까지 받게됐다.
우수한 엘리트 사원이면서 성격이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회사원 K씨는 결재를 받으러 상사의 방에 들어간다든지, 상사앞에서 업무 브리핑을 할때면 영락없이 목구멍이 간질간질해 지면서 기침이 몇번씩 나오곤 해서 난처할 때가 여러번 있었다.
중학생인 L군은 누이와 다투거나 부모님께 꾸중을 듣고난 다음에는 두드러기가 돋곤 하는 것을 경험했다.
평소 알레르기성 비염의 증세가 있는 C씨는 직장동료인 A씨와 불편한 관계. 복도에서 간혹 A씨와 마주친다든지, 업무상 할수없이 만나면 재채기가 나오고 심하면 콧물까지 흘러 더욱 신경이 쓰인다.
가정주부 M씨는 금년봄부터 한달에 한두번씩 천식증세가 생기는 환자로 분무용 기관지확장제의 흡입으로 증상이 곧 좋아지곤 하는 경한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매일처럼 발작이 일어나 알레르기 크리닉을 찾게 되었다. 진찰중 환자는 울먹이며 남편의 무관심을 호소하고, 특히 최근엔 더욱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고 그럴때마다 견딜수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상은 모두 정서적 불안정, 심리적 갈등이 알레르기증상을 유발시키거나 악화시키는 예들이다.
일반적으로 알레르기질환 환자들은 감정적으로 격한 상태가 될때 증상이 악화되는 것이 보통이다.
알르레기질환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증세가 있다가도 멀쩡해지고, 없다가도 갑자기 발생하므로 언제 증상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데 대한 불안감 등이 있고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위안을 받고 의존하고 싶어한다.
따라서 가족이나 가까운 친지들이 환자의 감정상태를 잘 다스려 주는 것이 환자의 치료에 큰 도움을 주는 것을 흔히 본다.
가족이나 주위사람들이 알레르기 환자들을 도와줄 일은 정서적인 것 말고도 많다. 연탄을 대신 갈아준다든지, 환자앞에선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든지, 집먼지가 원인인 경우엔 집안청소를 대신하는 등 여러가지 배려가 있을수 있다.
알레르기 증세의 악화는 대개 분노·불안·슬픔·공포 등의 나쁜 감정상태에서 발생하지만 간혹 유쾌하거나 즐거운 감정상태, 즉 껄껄거리고 웃을때도 천식 등이 발작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알레르기가 얼마나 심리적인 상태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가를 설명해 주는 예다. 알레르기 환자의 가족들이 정서관리에 세심한 배려를 해야할 필요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김유영<서울대병원 알레르기내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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