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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권고 받고도 족구모임에 … 여전히 부족한 시민의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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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97번 환자 A씨(46·강원도 원주시)가 병원으로부터 자가격리 권고를 받고도 족구 모임에 나가는 등 외부 활동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10일 강원도 보건 당국과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 따르면 A씨는 지난 5일 열이 심해져 이튿날 오전 6시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선별진료소를 찾았다. 그러면서 메르스 검사를 요구했다. A씨는 체온이 38도까지 올랐으나 기침과 가래는 나오지 않았다. 또 의료진의 질문에 “암 투병 중인 지인 병문안차 삼성서울병원 비뇨기과 병동에는 갔다”고 답했다. 추후 조사에서 A씨는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간 사실이 확인됐다. 이에 대해 세브란스기독병원 측은 “A씨가 처음 병원에 왔을 때는 응급실에 갔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A씨가 병문안 간 지인은 96번 환자(42·여)다.

 의료진은 A씨에게 “아직 확실치 않지만 메르스일 수 있으니 외부로 나가지 말고 집에 있으면서 증상을 살피고, 심해지면 병원에 오거나 보건소에 연락하라”고 했다. 이에 일단 귀가한 A씨는 이튿날 족구 모임에 나갔다. 경기는 뛰지 않고 참가자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이날 A씨와 만난 11명은 모두 자가격리됐다. A씨는 병원에 가기 전날인 5일 오후 7시쯤 열이 나는 상황에서 지인들과 스크린골프를 치는 등 메르스 증상이 나타난 뒤 모두 34명과 접촉한 것으로 보건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A씨는 지난 9일 메르스에 걸린 것으로 최종 판명됐다. 접촉자 34명은 전원 자가격리 대상이다.

 강원대병원 김우진 호흡기전문질환센터장은 “메르스 같은 병은 한두 명만 잘못된 행동을 해도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다”며 “특히 메르스가 고비에 오른 요즘, 메르스를 잡으려면 보건 수칙을 지키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충남 아산시에서는 사회복무요원이 출근을 하지 않으려고 메르스 핑계를 댔다가 징계를 받게 됐다. 충남경찰청에 따르면 김모(29)씨는 지난 8일 “교통사고 진료를 받은 병원에서 메르스 의심 환자와 접촉했다는 연락이 왔다. 검사를 받아야 해 출근하지 못한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 해당 병원에는 메르스 의심 환자가 들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물의가 빚어지는 것과 반대로 시민정신을 발휘한 메르스 환자 가족은 떡을 선물받았다. 지난 9일 경기도 성남시장실에는 대구의 한 주부가 보낸 떡 다섯 상자가 배달됐다. 분당의 여성 환자 가족에게 보내달라는 떡이었다. 성남시청에 따르면 대구의 주부는 “환자분께서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자신이 메르스에 걸렸음을 먼저 알리고 격리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이웃을 아낄 줄 아는 진정한 시민들이 식사나 제대로 하는지 걱정돼 떡을 보낸다”고 했다.

 한편 경찰은 10일까지 메르스 관련 유언비어를 유포한 6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지역 ○○병원에 메르스 환자가 다녀갔으니 가면 안 된다’는 등의 근거 없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혐의다. 경찰은 이들을 업무 방해 등의 혐의로 사법 처리하기로 했다. 경찰은 또 경기도 안양시 메르스 환자 접촉자 명단, 경기도 화성시 메르스 환자 명단 및 치료 병원 현황을 외부에 유출한 공무원 2명을 검거했다.

 경찰은 “병원 명단을 공개한 뒤에도 허위 사실 유포가 이어지고 있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감시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경찰에 접수된 메르스 관련 유언비어는 모두 44건에 이른다.

원주·아산=박진호·신진호 기자, 유성운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사진=신인섭·송봉근 기자, 프리랜서 공정식

11일 위 기사에 대한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었습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97번 환자 A씨(46ㆍ강원도 원주시)가 병원으로부터 자가격리 권고를 받고도 족구 모임에 나갔다는 원주제브란스기독병원의 주장<중앙일보 6월 11일자 8면>이 사실과 다르다는 의견이 나왔다.

A씨는 11일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처음 조사 때 A씨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간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의 주장에 대해 “분명히 응급실에 4~5시간 있다가 병동으로 올라갔다고 이야기했다”며 “겁이 나서 메르스 검사를 해달라고 했는데 의사가 메르스가 아니라고 했다”고 말했다.

A씨는 병원 측이 ‘메르스일 수 있으니 집에서 나가지 말고 증상이 심해지면 병원에 오거나 보건소에 연락하라고 권유했다’고 한 것과 관련해서는 “기침과 가래 등 증상이 나타나면 보건소에 연락하거나 병원에 오라고는 했지만 주택 격리 권고는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또 “병원에서 의사가 아니라고 하니까 족구모임도 가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이라며 또 A씨는 “저한테 소중한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이 위험해지는 행동을 왜 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관계자는 “당시 의료진이 A씨에게 기침과 가래 등의 증상이 없지만 메르스가 의심이 되니 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다”며 “응급실에 체류한 사실을 알렸다는 부분도 진료 기록상에는 비뇨기과 병동으로 갔다고만 적혀 있고, 응급실 간 것은 추후 역학조사에서 밝혀졌다”고 재차 확인했다. 또 “당시(A씨를 처음 문진했을 때) 의료진이 메르스 발생 병원 명단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명단을 보고 환자의 방문 병원을 물었다”고도 했다.

97번 환자 A씨는 지난 9일 메르스에 걸린 것으로 최종 판명됐다. 접촉자 37명은 전원 자가격리 대상이다.

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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