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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진 수요일] 청춘에게 책상은 전투장, 뇌세포 바치는 곳, 애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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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상’이란 말에 대한 몇 가지 상념.

想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청춘들이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무르는 공간은 어딜까. 床 어렵지 않게 정답이 떠오릅니다. 지금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공간. 그렇습니다. 책상입니다.

常 대부분의 20~30대 청춘들은 책상 앞에 항상 머무릅니다. 취업 혹은 승진을하기 위해…. 학교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집에서도 늘 책상 앞에 앉아 있습니다. 詳 자세히 보면 모든 책상은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의 얼굴이 다 다른 것처럼 책상 위에 놓인 물건들은 저마다 다릅니다. 어쩌면 책상은 청춘의 또 다른 얼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청춘리포트는 각기 다른 분야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20~30대 남녀 8명의 책상을 엿보았습니다. 저 여덟 책상에서 요즘 청춘들의 다양한 꿈 빛깔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foneo@joongang.co.kr

여경의 책상 “치안 활동 첫걸음 떼는 장소”
손남정(27·여·동대문서 청회파출소 순경)

동네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순경입니다. 저에게 책상은 주민과 소통하고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주는 공간입니다. 민원인 상담을 하고 주민들을 위한 치안 행정 업무를 하기 위해 하루 평균 5~6시간씩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는 곳이죠. 이 좁은 책상에서 치안 활동의 첫걸음이 시작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책상 오른쪽에 마스크 보이시죠? 요즘 메르스 때문에 걱정이 많으신데 대민 활동을 하려면 꼭 마스크를 껴야 해요. 손만 내밀면 닿을 곳에 딱 비치해뒀습니다.

닥터의 책상 “성공 시술 위한 베이스캠프”
임우현(35·심장내과 전문의)

심장내과 의사에게 책상은 치열한 전투장과 같습니다. 성공적인 부정맥 시술을 하기 위한 베이스캠프라고 할 수 있죠. 저는 매일 시술하기에 앞서 이 책상에 앉습니다. 긴장된 마음으로 시술 시 주의사항을 확인해야 하거든요. 환자의 의무기록도 이 책상에서 체크합니다. 창문 너머 보이는 시술실에 한번 들어가면 새벽 2시가 넘어 끝나는 날도 비일비재합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술 때문에 제 밥은 종종 주스와 피로회복제로 대체됩니다. 참, 의사의 책상에서 빠질 수 없는 건 바로 저 손 소독제입니다. 첫째도 위생, 둘째도 위생!

변호사의 책상 “바쁜 삶 증명해주는 곳”
손수호(37·법무법인 현재)

의뢰인을 위해 나의 뇌세포를 아낌없이 바치는 곳이 바로 이 책상입니다. 사실 변호사 일을 하다 보면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빠 책상에 편히 앉아 있을 수 있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던져둔 넥타이와 뜯어보지도 못한 서류 꾸러미가 제 바쁜 삶을 증명해주네요. 젊은 변호사 중에 본인의 책상이 깔끔한 사람은 별로 없을거에요. 보통 저녁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책상 앞에 앉아 제 업무에 매진할 수 있는데요, 신기하게도 한번 앉아서 일하기 시작하면 배고픔도 잊고 새벽까지 일하게 됩니다.

고시생의 책상 “하루 12시간 지겨운 풍경”
신주용(26·연세대 법학과 4학년)

벅찬 꿈에 지칠 때 묵묵히 함께해주는 애인 같은 존재. 바로 제 책상입니다. 저는 올해로 사법고시 준비 4년차에 접어든 고시생입니다. 오늘도 이 책상에서 상법 책을 펼치고 정리노트를 복습하고 있네요. 고시생들에게는 공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한 타이머가 필수품입니다. 저는 이 책상에서 매일 12시간, 하루의 절반을 보냅니다. 엎드리면 꿀잠이 쏟아지기 딱 좋은 각도죠? 하지만 요즘 저는 마지막 도전 앞에 눈에 불을 켜고 달리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길고 긴 시간, 제 시야를 가득 채운 이 지겨운 풍경이 그리워질 날이 오겠죠?

선생님의 책상 “아이들과 소통하는 받침대”
정민정(24·여·초등학교 교사)

교사에게 책상은 천진한 아이들과 100% 소통하는 선생님이 되기 위한 받침대라고 할 수 있어요. 1년3개월 전 꿈에 그리던 초등학교 선생님이 됐습니다. 책상에서의 제 하루는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에 시작돼 저녁 때까지 계속됩니다. 이곳에 앉아 매일 아이들의 숙제와 학습장을 확인해야 하니깐요. 고사리손으로 쓴 일기에 댓글을 달면서 뿌듯함을 느끼죠. 스승의 날 받은 카네이션 화분은 눈에 띄는 곳에 놓았습니다. 제 책상은 교과서와 교사용 지도서를 함께 펼쳐서 어떻게 더 즐거운 수업을 만들지 고민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취준생의 책상 “하루 평균 14시간 책상에”
신지수(25·여·성균관대 유교동양학과 4학년)

취업준비생에겐 책상 위에 올려둔 것을 다 공부하면 합격할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어요. PD 지망생인 저는 매일 이곳 도서관에 앉아 시사상식을 외우고 책을 읽습니다. 외우기 어려운 시사상식은 포스트잇에 써서 책상 벽에 붙입니다. 토익 시험이 있는 달에는 하루 대부분을 토익 공부에 투자하고요. 하루에만 평균 14시간 이상 책상에만 앉아 있는 것 같네요. 책상 위 인형은 제 친구입니다. 공부하다 지치면 책상 위 인형을 쓰다듬으면 은근히 위안이 되거든요. 우스꽝스러운 표정의 인형을 보면 절로 웃게 됩니다.

화가의 책상 “참신한 발상 여기서 나왔죠”
김현정(27·여·한국화가)

저에게 책상이란 나만의 작품을 구상하고 기획하는 곳, 그리고 소통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작품 구상을 위한 에스키스(esquisse·밑그림)를 할 때 책상 앞에 앉습니다. 저는 용도에 따라 세 개의 책상을 사용하는데, 이 책상은 작품 구상용입니다. 제 작품 콘셉트인 ‘한복을 입은 21세기 현대 여성’이라는 참신한 발상도 이 책상에서 나왔습니다. 이 책상 외에 실제 제 작품을 그리는 책상, 컴퓨터로 업무를 보기 위한 책상도 따로 있습니다. 이렇게 나누어서 사용하면 일에 대한 집중도가 더욱 높아지거든요.

배우의 책상 “나에게만 집중하는 공간”
성륜모(27·영화배우·한양대 경영학과 4학년)

데뷔 3년차에 접어든 신인배우입니다. 저에게 책상이란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매일 이 책상에서 좋은 연기자가 되기 위한 연습을 합니다. 언제 있을지 모르는 오디션에 대비해 틈틈이 시나리오나 대본을 한가득 쌓아두고 읽습니다. 영화·드라마를 보면서 상상력과 감성을 키우고요. 이 책상에 앉아 제 매력을 드러낼 수 있는 프로필과 포트폴리오를 만들며 영화배우에 대한 제 꿈을 키워갑니다.

하선영·임지수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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