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식 현대상선 前사장 사표 내자

중앙일보

입력

2000년 6월 현대상선이 북한 송금을 위해 산업은행으로부터 4천억원을 대출받을 당시 현대상선 사장이던 김충식(金忠植)씨가 2001년 사표를 내자 송금작업에 관여한 정부 핵심인사들이 그의 사퇴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으로 드러났다.

金전사장은 당시 산업은행으로부터의 대출을 반대했고, 그 후에도 문제의 4천억원을 "정부가 쓴 돈"이라며 상환을 거부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그가 퇴직한 뒤 송금 사실 등을 외부에 폭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당시 정권 실력자들이 나섰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대북 송금 의혹사건을 수사 중인 송두환(宋斗煥)특별검사팀이 지난달 31일 서울지법에서 열린 이기호(李起浩)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밝힘으로써 드러났다.

특검팀 관계자는 심사에서 이근영(李瑾榮.구속) 전 금융감독위원장이 金전사장을 만나 '모(某)씨의 뜻'이라며 현대상선에 남아 있을 것을 부탁했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거론한 모씨는 李전수석 등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의 전.현직 고위 관계자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李전위원장은 당시 金사장에게 "정몽헌(鄭夢憲)회장에게 얘기해 현대상선 부회장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는 제의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 관계자는 또 "金전사장이 퇴직할 당시 산업은행에서 현대상선에 그의 퇴진을 반대하는 내용이 담긴 공문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기호 전 수석은 이날 심사에서 법원이 구속의 필요성(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을 인정함에 따라 현대건설과 현대상선에 5천5백억원을 대출해주도록 산업은행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직권남용 등)로 구속 수감됐다.

한편 특검팀은 1일 정몽헌 회장을 '잠재적 피의자'신분으로 계속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鄭회장은 지난달 30일 특검팀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뒤 다음날 일단 귀가했다.

특검팀은 鄭회장에 대한 조사에서 위법 혐의를 상당 부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에 대해 특검팀 관계자는 "지금까지 구속시킨 李전위원장과 李전수석 등과 비교할 때 鄭회장은 대북송금에 개입한 범위가 넓고 추가로 확인해야 할 사안이 많아 일단 귀가시킨 뒤 계속 불러 조사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특검팀은 鄭회장을 귀가시키기로 결정한 과정에서 북한과의 관계와 경제에 미칠 영향 등도 고려한 것으로 전해져 이런 문제들이 그의 사법처리에 변수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특검팀은 2일 보강조사를 위해 李전위원장과 李전수석을 다시 부를 예정이다.
강주안.임장혁 기자joo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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