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협의 않겠다는 청와대에 … 여당, 메르스 회의 제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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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새누리당 비박계의 반격이 시작됐다. 청와대와 친박계가 유승민(사진) 원내대표의 사퇴를 압박하자 비박계가 유 원내대표에 대한 지원사격에 나섰다.

 3일 오전에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대표적 비박계 인사인 이재오 의원은 “지금 메르스 때문에 국민이 얼마나 불안해하는데 당·청 간 내분이나 일으키는 청와대는 대체 생각이 있는 것이냐”며 “청와대는 오늘부터 정쟁 유발 발언은 그만하고 메르스 확산 방지에 전력을 다해 달라”고 말했다. 전날 청와대 측이 당정 협의 거부를 시사한 데 대한 비판이었다. 이 의원은 “여당이 공무원연금법이란 실리를 챙겼으면 야당에도 명분을 줘야 한다”며 “개정 전이나 후나 큰 차이도 없는 국회법을 가지고 이렇게 세상을 시끄럽게 할 일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정병국 의원도 “국회법 통과에 문제가 있다면 우리 모두의 책임이지, 이게 왜 유 원내대표 혼자만의 책임이냐”며 “의원총회까지 열어 논의한 뒤 87%의 찬성률로 통과시켜 놓고도 ‘나는 반대했으니까 책임 없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위원으로서 무책임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이날 회의에 불참한 친박계 서청원 최고위원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연석회의에선 급기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 당·정·청 회의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회의 뒤 원유철 정책위의장은 청와대 현정택 정책조정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이 같은 당의 제안을 전달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내부 검토를 거친 뒤 “지금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워낙 바쁘니 조금 있다가 여는 게 좋겠다”는 답변을 새누리당에 보내왔다고 한다. 현 수석은 기자들에게도 “메르스 수습이 중요한 만큼 (문 장관이 바쁜) 지금 당·정·청 회의를 여는 것은 현재로선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침묵하던 유 원내대표도 입을 열었다. 그는 기자들이 청와대의 당정 협의 거부방침에 대해 묻자 “어른스럽지 못한 얘기”라고 일축했다. ‘공무원연금법안을 처리 못해도 좋으니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 안 된다’고 청와대가 당부했는데도 자신이 개정안을 밀어붙였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그건 잘못된 보도”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통화에서 국회법 개정안 문제를 지적하긴 했지만 그런 식으로 얘기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초 공무원연금법 개정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문구를 연계하는 협상안이 청와대에 제대로 보고됐느냐는 문제를 두고 청와대와 새누리당 지도부가 진실게임을 벌였던 양상이 재연된 모습이다.

 친박계와 비박계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김무성 대표는 청와대와 유 원내대표를 중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김 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대 특강 후 기자들에게 “만나서 상의하고 협조하는 것이 당·정·청인데 의견이 좀 다르다고 회의를 안 하는 건 잘못된 일”이라며 유 원내대표를 편들었다. 하지만 특강에선 “(당과 청와대는) 한 몸”이라며 “당은 대통령이 하는 일을 뒷받침하고 베이스(기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일단 자신이 최대한 시간을 벌면서 방패막을 쳐줄 테니 그동안 유 원내대표가 국회법 개정안에 강제성이 없다는 대목을 확실히 정리해 청와대의 체면을 세워 줬으면 한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당내에선 메르스 확산이 비상상태로 치닫고 있는 마당에 당·청이 자중지란에 빠지는 건 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직계로 분류되는 이정현 최고위원도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유 원내대표 사퇴보다는 메르스 혼란 수습이 먼저”라며 누그러진 자세를 보였다.

  김정하 기자 wormho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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