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재판받으려 5시간 기다린다|짜증…민사소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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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5분재판을 받기위해 4∼5시간씩을 기다려야하는 「뜸들이기 민사재판」이 사라지지 않고있다. 이는 일반행정체제가 신속·간편한 국민편의 위주로 개선되고 있는데 반해 유독 민사재판 업무만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으로 소송 당사자인 원고·피고는 물론 증인 가족들이 20∼40평짜리 비좁은 방청석에서 북적거리며 몇 시간씩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곤욕을 치르고 있다. 현행 민·형사소송규칙은 당사자 소환을 상오10시와 하오2시 두 차례로 시차제를 적용토록 하고 있으나 한단독심 재판부의 경우 하루 70∼80건을, 합의부는 60여건씩 무더기 재판을 진행하는데다 법정수가 모자라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실정이다.
민사사건의 경우 1건에 심리소요시간이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사인간의 경제걱·신분적 관계를 규명하는 민사재판의 심리미진우려마저 낳고 있다.
◇실태=29일하오3시쯤 서울민사지법1l2호 20평 남짓한 법정엔 원고·피고·증인등 소송관계자 80여명이 발디딜틈없이 들어차고도 모자라 법정밖 계단이나 벤치에도 30∼40명이 서성거렸다.
채권·채무관계로 다투던 40대여자 2명이 재판장 앞에서 4∼5분가량 진술을 마치고 법정밖으로 나와 30여분간 서로 삿대질을 하며 언성을 높인다.
『원고·피고는 증빙서류를 가져왔습니까』『원고가 빌려준돈이 1백30만원이 맞습니까』 『피고는 그중 갚은 것이 있습니까』등 간단한 질문 몇마디.
원고와 피고는 할말이 많은 듯 서로 『주었다』『못 받았다』고 언성을 높이며 장광설을 늘어 놓으려다 『재판정에서 싸움을 하시면 안됩니다. 다음 기일에 니오세요』하며 다음차례로 넘어가는 바람에 얼굴만 붉힌채 7분여만에 밖으로 나갔다.
7분의 재판을 받기 위해 두 여자가 기다린 시간은 2시간.
이날하오 열린 재판은 모두 65건. 판사1명이 퇴근시간을 2시간이나 넘긴 하오 8시쯤까지 재판을 했는데도 건당 심리시간은 7분.
이 재판에 불려나온 원고·피고와 증인등은 l백30여명.
하오2시 일시에 소환된 이들은 거의 재판이 끝날때까지 절반쯤서서 기다려야 했다.
이 때문에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은 수시로 법정을 드나들며 차례를 확인하느라 법정안은 시골장터처럼 북새통이다.
이날 하오6시30분쯤 재판을 마치고 나온 최종만씨(39·서울한강로H용역대표) 는『5분간 재판을 받기 위해 4시간30분을 기다렸다』고 투덜거렸다.
이날 두번째 공판을 치른 최씨는 『첫공판때 2분, 이날 5분, 앞으로 두세차례 공판을 더 연다해도 재판소요시간은 모두 30분을 넘기지 않을 것 같다』면서 『공판이 있는 날은 다른 일은 아예 할 엄두를 못 낸다』고 불편을 호소했다.
지난 13일 하오5시쯤 옆가게 사람의 폭행사건 증인으로 나와 3시간을 기다렸다는 강모씨(35·서울이동 성원아파트)는 『그동안 경찰서·검찰에 불러 다닌것만도 여러차례인데 또 법정에 나와 여러시간을 소비, 손해가 크다』며 『다시는 신고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법관·법정부족=무더기·지연재판의 원인에 대해 법원당국자들은 폭주하는 사건에 비해 법관수가 모자라는 데다가 법정규모도 작고 수도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재 법관수는 6백76명으로 정원7백87명보다 1백11명이나 부족하다.
◇대책=뜸들이기 재판을 없애기 위해서는 서울의 경우 재판횟수를 1주 1회에서 2∼3회정도 늘려야하며 이를 위해 지금보다 15∼20개의 법정이 더 필요하다.
서울민사지법 임규운수석부장판사는 『서초동 신청사가 완공되는 88년에야 이같은 불편이 완화될 것 같다』면서『현재 상오10시, 하오2시로 고정돼 있다시피한 소환시간을 하오2시, 4시, 5시등으로 세분, 개선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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