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행] "버블서 깨어난 국민 충동구매 거의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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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최근 일본에서 '연봉 3백만엔 시대를 살아가는 경제학'이란 저서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모리나가 다쿠로(森永卓郞.사진) UFJ종합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그동안 부풀 대로 부풀어 올랐던 생활 속 거품이 하나 둘 빠져 이제는 '거품 빼기의 일상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수입이 줄면서 생활 수준을 낮추는 데 대한 일본인들의 불안감은 없나.

"주어진 현상에 만족하는 게 일본 사회다. 예를 들면 중국제 옷을 입고 동남아산 야채와 호주 쇠고기를 먹고 있으면 생활비가 덜 든다. 그렇게 사는 데 대한 거부감이 다른 나라에 비해 극히 적다. 버블 때 잠시 다른 길로 빠지긴 했지만 원래 일본인의 길은 이같이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대다수 일본 국민이 그동안의 버블에서 깨어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찾고 있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생활하기 힘들어진 것은 아닌가.

"일본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3만8천달러로 룩셈부르크에 이어 세계에서 둘째로 높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비해 거의 두배 수준이다. 물가가 다소 비싸긴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소득이다. 이것으로 제대로 생활을 못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

-소비 행태에 변화는 없나.

"고도 경제성장을 거치면서 웬만한 가정엔 없는 게 없다. 고급 TV와 냉장고.세탁기는 기본이고 지하철 및 전철망이 잘 정비돼 있음에도 자동차 보급률이 73%나 된다. 한마디로 이미 생할의 기초조건은 다 갖췄다. 여기에서 추가로 필요한 것들은 개인마다 꼼꼼히 계산해 구입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충동구매는 거의 사라졌다. 버블 붕괴를 계기로 각 가정의 소비설계가 견실화됐다."

-소비의 감소로 이어질 우려는 없나.

"그렇지 않다. 예컨대 내가 아는 연봉 2백만엔의 어느 사람은 최근 50만엔을 들여 서핑보드를 새로 구입했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선 돈 쓰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즉 1990년대 초까지 일본은 고속도로에서 모두가 빠른 속도로 달리는 사회였다. 다른 사람이 비싼 물건을 사면 자신도 사고, 또 새로운 물건으로 빠르게 전환하는 소비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도로 내려왔다고 할까, 여러 갈래로 나뉘어 달리는 다양한 사회구조가 형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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