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의 경찰|이덕영기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서울대에 투입됐던 경찰병력이 이틀만인 25일밤 철수했다.
이현재서울대총장은 경찰철수와 때를 맞춰 담화문을 발표,『학원의 위기상황을 올바로 인식하고 학원정상화에 전력해달라』고 학생과 교수들에게 당부했다.
그러나 경찰의 병력수송버스가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교수나 학생들은『과연 경찰투입이 적절한 조치였었나』하는 의문과 함께 밝지 못한 표정들이었다.
학생들의 시험거부가「대학의 기본을 흔들만큼」심각했다고 하더라도 학사행정의 해결에까지 과연 경찰력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반성이 뒤따랐다.
시험을 방해하는 선동 학생들을「차단」시키면 시험분위기가 달라지고 응시율도 회복되리라고 생각했던 당국의 판단은 적중하지 않았다.
경찰이 투입된 24일 응시율은 전날보다 떨어진 26%였다.
고사장앞에 서서 적극적인 시험거부운동을 펴던 학생들의 모습은 사라졌으나 대신 경찰병력이 배치된 잔디밭에 누워 시험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의 수는 여전히 많았다.
초조하게 매시간 응시율을 점검하던 교직원들도 학생들의 결의를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한 관계자는『경찰력이 투입된후 응시를 방해하는 학생이 없어져 수동적으로 시험거부에 동조하는 학생들이 시험에 응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많은 학생들이 경찰투입에 감정적으로 시험을 거부해 응시율이 떨어졌던것 같다』고 분석했다.
경찰은 시험을 방해하던 학생들을 일반학생과 분리시키는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경찰력이 적극적으로 응시율을 높이는데는 당초부터 아무런 역할도 기대하듯 없었다. 오히려 무비판적으로 분위기에 휩쓸려 고사장을 외면하던 학생들에게 응시불응의 구실을 준 부작용을 낳은셈이다.
시험거부를 교수들의 판단에 맡겨 성적에 반영하면 족한 학사문제이지 경찰이 해결할 수 있는「사건」이 아니라는 입장을 표명하는 교수들이 있다.
이들도 질서를 파괴하는 폭력행위에 대한 경찰력의 개입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경찰력을 학원으로 불러들인 학생들쪽에도 문제가 없는것은 아니다.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존중하는것이 대학인의이상이라면 힘으로 동료학생의 고사장입장을 막은 학생들의 행위를 폭력으로 규정지어도 할말이 없다.
학원자율화 1년도 채못된 마당에 일어난 서울대의 경찰력 투입을 계기로 학생·대학당국, 그리고 정부당국 모두가 깊은 생각을 해야 할것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