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거부권 행사 64차례 … 국회 뜻대로 관철 33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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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국회법 개정안의 운명은 박근혜 대통령의 결심에 따라 달라진다. 국회로부터 5일께 개정안을 송부받을 박 대통령이 15일 이내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개정안은 그대로 법률로 굳어진다. 반면 헌법 53조 2항에 따라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하면 개정안은 국회로 되돌아간다. 다시 개정안을 받아 든 국회는 본회의에서 개정안을 재논의하는 절차를 밟는다. 이 경우 국회 재적 의원(298명)의 과반수(150명)가 출석해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개정안은 법률로 확정된다. 보통 의결정족수인 재적 과반 출석, 출석 과반 찬성보다 조건이 까다롭다. 찬성표가 3분의 2에 미달되면 개정안은 폐기된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하느냐다. 국회법 개정안이 지난달 29일 본회의에서 통과될 때 찬성 비율은 86.5%(244명 중 211명 찬성)에 달했다. 박 대통령이 개정안을 다시 국회로 보내 재의(再議)에 부쳐도 3분의 2가 넘는 의원이 찬성해 법률로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럴 경우 박 대통령은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되고 당·청 관계도 악화될 수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역대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한 건 모두 64차례다. 이 중 국회가 재의결(31차례)하거나 대통령이 거부를 철회(2차례)해 국회 뜻대로 된 게 절반을 넘는 33차례다.

가장 최근인 2013년 1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택시법(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 촉진법)’에 거부권을 행사했을 땐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 정부가 혜택을 주는 데 반대하는 여론이 압도적이어서 국회가 재의를 포기했다. 대통령의 거부권이 효과를 본 경우다. 박 대통령이 거부권 카드를 꺼낼지 말지를 결정하는 데 여론의 흐름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박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6월 임시국회가 시작되면 국회 협조를 받아야 할 사안이 많다. 우선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다. 인사청문회 일정을 놓고 여야가 줄다리기를 하는 마당에 거부권 행사까지 더해지면 야당이 황 후보자의 국회 인준을 더 강하게 반대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경제활성화법안 등의 처리를 위해서도 대국회 관계는 나빠서 좋을 게 없다.

 이런 여건을 감안할 때 고려 가능한 대체 카드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것이다. 헌법 111조, 헌법재판소법 2조와 62조에 따르면 정부는 국회에 의해 권한을 침해받을 경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헌재는 9명의 재판관 중 7명 이상의 참여로 심판하게 되고 종국심리(終局審理)에 관여한 재판관 과반수의 찬성으로 정부 권한이 침해됐는지를 결정하게 된다. 새누리당 주호영 의원이 정책위의장이던 지난 1월 30일 정의화 국회의장을 상대로 ‘국회선진화법’으로 불리는 국회법이 국회의원들의 심의·의결권을 침해했다며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헌재 결정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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