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강해진 경제 체력 … ‘민주정부 무능론’ 잠재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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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호 10면

우리는 1960년대, 70년대의 산업화를 ‘압축적 산업화’로 부르는 것처럼 ‘87년 체제’하의 민주화를 ‘압축적 민주화’로 부른다. 이는 87년 민주화 이후 불과 10년 만에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달성했기 때문이다. 정치군인들은 병영으로 되돌아갔고 각종 선거 경쟁이 제도화됐다. 무엇보다도 평화적 정권교체가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남으로써 모든 한국의 정치인과 국민이 선거를 통하지 않고서는 권력을 잡을 수 없다는 규범을 내면화하게 됐다.

‘87년 체제’ 무엇을 남겼나

 87년 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절차적으로 공고화됐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과거 권위주의 체제보다 우월한 실적을 달성함으로써 ‘민주정부 무능론’을 잠재웠다. 권위주의정부 시대(1961~87년)와 민주정부 시대(1987년~현재)의 경제 실적을 비교하면 경제성장률을 제외하고 총고정자본형성, 국내투자율, 국제무역수지, 인플레이션, 실업률 등에서 모두 민주정부가 확연하게 앞선 것으로 나타난다. 경제성장률도 민주정부가 두 차례에 걸쳐 외부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한 외환·금융위기를 겪은 것을 감안하면 권위주의보다 열등한 성적을 거두었다고 볼 수 없다. 우리는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정부들이 이룩한 경제 실적에 찬사를 보내야 한다. 그러면서도 민주정부들이 거둔 좋은 실적이 ‘좋은 민주적 거버넌스’에 의해 가능했다는 것을 잊어서도 안 된다. 한국인들은 민주주의의 가치와 능력에 회의하기보다 민주주의만이 ‘우리 동네의 유일한 선택’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제 한국에서 누구도 민주주의의 전복 가능성을 염려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문제는 공고화된 한국 민주주의가 질적(quality)으로는 아직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몇몇 분야에서는 ‘민주주의의 후퇴’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후퇴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영역은 정치적 자유다. 국제인권단체인 프리덤 하우스는 김영삼 정부부터 ‘정치적 권리’와 ‘시민적 자유’에 2등급을 부여함으로써 한국을 ‘자유로운(free)’ 민주국가로 분류했다.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5년에는 정치적 권리를 1등급 상향시켜 한국의 평균 자유지수를 1.5등급으로 상향 조정했다. 그러나 2014년부터 정치적 권리를 다시 2등급으로 강등시켜 한국의 자유지수는 김영삼 정부 시대인 90년대로 후퇴했다.

 언론자유의 후퇴는 더욱 심각하다. 프리덤 하우스와 ‘국경 없는 기자회’ 모두 이명박 정부 시기에 한국의 언론자유 지수를 ‘부분적으로 자유로운(partly free)’ 등급으로 강등했고 아직까지 그 등급이 지속되고 있다. 인터넷언론자유(freedom on the net)도 2011년부터 ‘부분적으로 자유로운’ 국가로 강등됐고 아직 자유로운 국가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질적 도약을 이룩하지 못하고 몇몇 분야에서 질적 후퇴를 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비동시성의 동시성’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의 민주화는 산업화와 마찬가지로 ‘압축적’으로 이뤄졌다. 전근대적인 권위주의의 제도와 문화를 청산하지 못한 채 근대적인 자유민주주의를 실시했다. 이로 인해 가신주의, 연고주의, 인치주의와 같은 전근대적인 관행과 문화의 찌꺼기가 ‘현재’ 민주주의에 들러붙어 한국 민주주의의 질을 떨어뜨리고 근대와 전근대 세력 간에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여기에 정보기술(IT) 혁명에 힘입어 탈근대적인 소셜미디어 민주주의까지 도입되면서 온라인상에서 세대이념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가장 세련되게 해결하는 정치 체제다. 현재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갈등 구조는 이념, 정체성, 이익 갈등과 같은 비동시적 갈등이 공존, 충돌하는 복합 갈등이다. 이런 갈등은 부정하거나 전체주의적 틀에 가두어 버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이러한 복합 갈등을 다원주의적 공존과 권력공유를 실현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제도 디자인을 통해 해결함으로써 질 높은 민주주의로 한국 민주주의를 재도약시키는 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시대적 과제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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