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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 포커스] 땅 좁고, 해군 주둔, 주변국 멀고 … 자유무역지대 입지 경쟁력 떨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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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의 극동통상항.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 ‘블라디보스토크의 자유항에 관한 법률’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블라디보스토크는 좁은 땅에 해군기지까지 있어 무역항으로 성장하기에 한계가 있다. [타스]

“러시아가 동쪽 대문을 열어야 한다”는 말은 오래됐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유는 무엇인가?

러시아 연방 내 극동과 시베리아 지역의 총생산은 2650억~2800억 달러 규모다. 이는 북한과 라오스·캄보디아·브루나이를 제외한 동남아시아 어느 국가의 GDP보다도 적다. 러시아 동부의 경제가 이처럼 허약하다면 ‘진입점 ’으로 어떤 매력이 있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기민하지도 않고 사업에 의심스러운 태도를 갖고 있는 러시아 관료들은 투자 결정을 할 사람마저 훼방 놓는다. 관세청, 규제기관과 허가기관, ‘실로비키( 정보기관·군·검찰 출신의 힘 있는 정치인)’, 국세청은 한국과 중국 또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외국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환경은커녕 그보다 훨씬 못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중국에선 경제성장의 주요 동력이 됐던 자유경제구역 경험이 러시아에서는 전혀 정착되지 못했다.

20세기 초 블라디보스토크는 극동지역 최대 항구이자 러시아의 진정한 관문이었으나 현재 그 의미는 거의 사라진 지경이 됐다. 2014년 블라디보스토크의 화물 처리량은 고작 1530만t에 그친 반면 중국 다롄은 3억9000만t, 한국 부산은 3억3000만t, 그리고 일본 나고야는 약 2억3000만t이다. 대외교역이 급속히 감소한 2015년에는 격차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국제 화물 수송에서 해상 운송의 비율이 67~68%이고, 세계 총생산의 60% 이상이 해안 100마일 내에서 생산되는 해양경제 시대에서 이렇게 뒤처진 상황은 확실히 뭔가 조치를 요구한다.

모든 점을 고려할 때 러시아 지도층이 문제를 인식하기는 한다. 지난해 12월 연방의회에 보낸 교서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블라디보스토크가 1862~1900년과 1904~1909년에 누렸던 자유항 지위를 이 도시가 되찾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정부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자유항에 관한 법률’ 초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만으로 정부가 기대하는 결과가 생길 것인가.

블라디보스토크는 오늘날 극동 자유항을 조성하는 데 최적의 장소는 아니다. 이곳엔 해군기지가 있는 데다 군인들이 항만의 대부분 구역을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동원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산업단지를 조성할 만큼 큰 부지가 없으며 중국 국경까지의 거리도 100㎞가 넘는다. 이 모든 것은 러시아 관리들이 ‘자유항의 경쟁자는 러시아 다른 지역이 아니라 인접 아시아 국가의 자유지대’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자유항은 러시아 다른 곳보다 더 자유로워야 한다’는 수준의 인식에 사로잡혀 있음을 드러낸다.

필자가 보기에 ‘자유항’ 프로젝트는 지역경제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존재 의미가 있다. 지도를 펼치면 연해주의 전략적 의미는 중국 북부의 커다란 영토 즉 인구 9000만 명, 지역총생산이 7500억 달러에 달하는 동북 3성(헤이룽장, 지린, 내몽고 자치구)을 바다로부터 고립시킨다는 점에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서 생산되는 상품은 다롄항이나 잉커우항으로 운송되는데 제조된 곳에서 1100~2300㎞ 떨어진 항구에서 선적된다는 의미다. 수출뿐 아니라 중국 남부 항으로 수송하기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따라서 러시아의 자유항은 중국 국경에서 최소 거리(20~25㎞)에 자리잡아야 한다. 예를 들어 트로이차 만에 있는 소항구 자루비노를 기반으로(북위 42도 38분, 동경 131도 06분) 치외법권 지위도 갖는 현대적 도로와 철도로 중국 영토와 연결됐어야 했다.

항구 주변 200~250㎢ 넓이의 땅에 벽을 치고 세관과 출입국관리소를 설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 선전이 그렇게 했다. 그러면 일본·미국·필리핀은 물론 중국으로 들어가는 중국 상품, 중국 북부 지방으로 가기 위해 외국 상품들이 이 항구를 통과했을 것이다.

중국 북부의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신항만이 건설되면 5~6년 만에 연간 화물 8000만~1억t을 거뜬히 운송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극동연방대학교 전문가들의 추산에 따르면 이런 규모의 시설은 연해주 지역총생산을 현재보다 30~35% 성장시켰을 것이다. 이러한 정책이 어떻게 지역 경제를 도약시키는지는 두바이 제벨 알리 항의 산업복합단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중국의 급속한 산업발전 경험은 낡은 생산시설을 현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소위 ‘그린필드(greenfield) 프로젝트’가 예전이나 지금도 가장 성공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최근의 예는 선전 근교 치안하이의 ‘정보 메가폴리스’ 프로젝트 개발을 들 수 있다.

러시아는 오래전부터 아시아와 유럽의 화물운송을 도맡는 통과국이 되길 바라왔다. 그러나 아직 수에즈 운하가 있을 뿐 아니라 기업들도 러시아 철도 운송의 가격과 질을 걱정하고 있다. 러시아가 좀 더 거리가 짧고 훨씬 납득이 되는 아시아 내 화물운송으로 수익을 얻으려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러, 일본에 블라디보스토크항 참여 제안

세르게이 카차예프 극동개발부 차관이 지난 21일 도쿄 러일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세르게이 미혜예프]

러시아는 일본 기업들이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프로젝트 추진에 참여할 것을 제안한다고 세르게이 카차예프 극동개발부 차관이 5월 21일 도쿄 러일포럼 ‘접촉점: 비즈니스, 투자, 스포츠’에서 밝혔다. 카차예프 차관은 자유항 구역이 연해주 남부 자루비노 항에서 보스토치니 항 사이에 있는 13개 지자체를 아우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구역에서는 “기업활동 및 투자활동을 위한 특별한 법적 체제가 적용되고, 관세자유지역 체제가 제공되며, 하나의 통합세가 도입되고, 무비자 방문이 보장되고 자유항 등록과 운영에서 특별히 간소화된 절차가 보장될 것이다.”

카차예프 차관의 말에 따르면 자유항 체제는 아태지역 기업과 국가의 운송비용을 감소시키고 ‘프리모리예-1’과 ‘프리모리예-2’ 국제운송축(중국 북부에서 러시아 연해주의 태평양 항만들까지)의 실현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또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통한 아시아~유럽 최단 육로운송로 및 북극항로를 통한 유럽으로 가는 최단 항로의 조성을 촉진할 것이다.

블라디슬라프 이노젬체프 (경제학 박사, 후기산업사회연구센터장)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 극동 자유항 프로젝트, 실효성 있나
산업단지 조성할 큰 부지 없고
군, 필요 따라 수시로 항만 통제
중국 국경까지 거리 100㎞ 넘어
주변국과 근접한 위치 조건에
치외법권 도로·철도 연결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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