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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가 그린 그림 한 장. 2만 명이 '좋아요'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의료인, 특히 간호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있다. 병원 안팎에서 겪는 의료인의 삶과 애환을 한 장의 그림에 담아낸 ‘간호사이야기(https://www.facebook.com/nurseingstory)가 그 것. 지난 3월 개설된 후 2달 여 만에 이 페이지를 구독(좋아요)한 인원은 2만3000명(5월 22일 기준)을 넘었다. 국내 최대의 간호사 협회인 대한간호협회 페이스북 페이지(2만6000명)와 비슷한 수준이다.

▲ 출처-페이스북 간호사이야기(https://www.facebook.com/nurseingstory)

▲ 페이스북 간호사이야기(https://www.facebook.com/nurseingstory)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는 오영준(29)씨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내 그림이 나오는 걸 보면 아직도 얼떨떨하다”고 말하며 수줍게 웃었다. 그는 인천 가천대길병원 내과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3년 차 현직 간호사다. 그는 “그림을 통해 사회가 갖고 있는 간호사들의 편견이 조금이나마 해소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원래 미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전역 후에 간호학과에 편입했다. 현실과 꿈 사이의 괴리감 때문이다. 미술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는다면 존경하는 인물의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는 나이팅게일이었다.
모든 간호사들이 그렇겠지만, 1~2년 차는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다. 요즘 들어 조금씩 여유를 찾아가는 중이다. 그러다 지난 2월부터 태블릿PC가 생겨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인들을 그려주거나, 습작들을 개인 계정에 올리다가 3월 중순부터 페이지를 만들었다. 페이지를 만든 이유는, 사람들이 그림을 공유하면서 개인 정보가 새나갈 까 걱정돼서다(웃음).

- 이제 웬만한 웹툰(인터넷 만화)만큼 페이지가 인기를 얻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처음 페이지를 만들 때부터 이걸 만들어서 돈을 벌거나, 책을 만들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간호사들이 겪는 스트레스, 애환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댓글을 보면서 공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런 순수한 의도로 그림을 그려서 반응이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림이 사실적이라 더 공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 소재는 어디에서 얻나.
현직에 있기 때문에 보고 배우는 것이 모두 소재다. 학생 때 실습한 경험이나, 다른 병동의 간호사들과 소통하면서 소재를 떠올리기도 한다. 제보도 받고, 인터넷을 통해 간접적으로 간호사들이나 의료계 모습을 접해 활용한다. 보통 한 장의 그림을 그리는 데 1~2시간쯤 걸린다.
앞으로는 간호사를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각도 그리려고 한다. 대중들이 바라보는 간호사 이미지는 왜곡된 면이 많다. 간호사는 생명의 최전선에 있고, 의료 현장에서 누구보다 고생하며 환자에게 헌신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거리감이 그림을 통해 좀 더 줄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약 200장 정도 그림을 그렸는데, 앞으로 차근차근 올릴 계획이다.


- 그림이 간호사로서 삶을 되돌아보게 한 계기가 됐을 것 같다.
간호사로서 어려운 점이 많다. 예를 들어 간호사들은 보통 교대근무를 하기 때문에 사소한 약속 하나도 제대로 잡지 못한다. 중환자실 같은 경우에는 중증도가 높기 때문에 환자의 변화에 따라 간호사가 받는 스트레스도 높다. 근무 환경도 열악하다. 그걸 그림을 통해 표출하게 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요즘은 그림에 달린 댓글을 많이 본다. 간호사들끼리 서로를 위로하고 다독이는 걸 보면 지친 마음과 감정을 치유하는 통로가 되는 것 같이 기분이 좋아진다.
최근 간호사를 ‘아가씨’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를 담아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이 그림을 두고 일반인과 간호사들이 서로 댓글을 통해 말싸움을 벌이더라. 25만 명이 그림을 클릭했고 댓글은 5000건이 넘게 달렸다. 응급실에서는 온 순서대로 환자를 봐달라고 요구하는 보호자가 있다. 손가락 다쳤는데, 먼저 왔다고 심폐소생술하는 의료진들에게 항의하는 식이다. 이 얘기를 듣고 그림으로 표현했는데 뉴스와 방송에서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그 동안 몰랐던 생각의 차이가 온전히 느껴졌다. 간호사, 일반인, 보호자가 생각하는 건 모두 다르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간호사는 3년 차가 위기라고 한다. 특히, 남자 간호사들은 3년 차 이상을 찾아보기 어렵다. 남자 간호사로 후배들이 따라갈 롤모델이 부족해 안타깝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맡은 자리에서 책임감 있게 일을 하는 모습을 동료나 선후배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림을 그리면서 임상에 오래 남고 싶다. 그림은 꾸준히 그릴 계획이다. 개인적으로 미대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룰 수 있게 돼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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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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