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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손열음, 직업을 칼럼니스트로 바꾸려는 건 아닐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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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업을 칼럼니스트로 바꾸려는 건 아닐까. 피아니스트 손열음(29)의 음악 칼럼이 부르는 의혹이다. 그는 2010년 5월 중앙SUNDAY에 칼럼 연재를 시작했다. 작곡가ㆍ작품ㆍ음악에 대한 글이 지금껏 50회를 넘겼다. 원고지 10장 분량으로 시작한 칼럼의 위상은 점점 높아졌다. 분량이 늘어났고, 코너 이름도 생겼다. 신문의 맨 뒷 페이지에서 앞쪽으로 전진 배치됐다. 최근 칼럼을 묶어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를 냈다. 독일 하노버는 손열음이 2006년부터 살고 있는 도시다.

손열음에게 글 쓰기는 ‘제2의 직업’ 이상이다. “한때 주객이 전도될 정도로 글에 집착하는 바람에 그만 써야 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그럴 정도로 글쓰기에 빠져있다. 스스로 “왜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글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손열음은 왜 글을 쓰는가, 피아니스트가 어떻게 글을 잘 쓰는가. 26일 한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세 가지 이유를 꼽아봤다.

#이유1=말 하기 싫어 쓴다
손열음의 스승인 피아니스트 김대진은 “처음 만나고 한동안 열음이 목소리를 들어본 적 없다”고 기억했다. 그만큼 내성적인 아이었다. 손열음 어머니 최현숙씨도 “극심하게 낯을 가려 사람 만나는 것도 겁내던 딸”이라고 소개했다.
말하기를 꺼리는 성향은 지금도 남아있다. “5분간 말하기와 원고지 100장 글쓰기를 택하라면 후자를 하겠다” “필담(筆談)으로 대화하는 사회라면 참 편할 것 같다” “혼자 있는데 전화가 걸려와 말 해야만 하는 상황이 싫다”고 했다. 말로는 표현ㆍ이해가 충분치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택했다. “말보다 다각도로 뜻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려서부터 머릿속에 어떤 내용이라도 글로 쓸만한 것이 들어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손에 잡히는 아무 책이나 들고 베껴 썼다.

#이유2=많이 읽었기 때문에 쓴다
글을 읽거나 쓸 때는 그 세계에 완전히 빠졌다. 유별난 책벌레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하루 10권을 읽었다. 어린이 책은 진작 떼었다. 어른들을 위한 역사책을 주로 읽었다. “조선사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사람들의 행동 양식, 삶과 죽음의 교차를 지켜보는 일이 좋았다.” 이후 20세기 한국 문학, 독일 문학 순서로 관심사가 바뀌었다. 지금은 심리학ㆍ철학에 대한 책을 본다.
어른들의 책을 읽으며 썼던 글에는 아이다움이 없었다. 손열음은 “중학교 2학년 때 전국 대회 대상을 받았던 글을 요즘 보면 아이가 무슨 이런 글을 쓰나 싶다”고 했다. 당시 유행하던 인조인간 로보트 만화를 놓고 ‘나 어렸을 땐 없던 내용이라 격세지감을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또래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이유3=음악에서 맺힌 한으로 쓴다
손열음은 “글 쓸 때야말로 내가 완전한 총감독이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무대 위의 연주는 대부분 불공정하다. 아무리 준비를 해도 연주하는 순간에 삐끗할 수 있다.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기막힌 연주를 하고서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게 됐다. 대신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는 “시간예술인 음악의 순간성에 지쳤는지도 모르겠다”며 “글을 쓸 때면 무언가 해소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한번 쓴 글을 고치고 또 고친다. 최소 20번, 많게는 수백 번 다시 읽고 그때마다 고친다. 완성본을 e메일로 보내고도 보낸편지함을 열어 몇 번이고 손본다. “음악보다 글에서 더 완벽하고 싶다”고 했다. “음악은 날 것의 느낌이 살아있는 게 좋다. 하지만 글은 영원히 남기 때문에 완벽해야 한다." 손열음에게 음악은 가장 잘하는 일이다. 글은 경외의 대상이다. 그래서 “글과 책은 내 인생의 도입부를 완전히 사로잡았던 위대한 것”이라며 치열하게 쓴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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