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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부회장, 삼성 경영권 승계 8부 능선 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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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재용(47)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의 그룹 경영권 승계 작업이 8부 능선을 넘었다. 이번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은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제일모직)와 삼성전자 지분을 많이 갖고 있는 기업(삼성물산)이 합쳤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간 삼성그룹이 진행해 온 합병·매각, 사업부문 재편이 ‘가지치기’였다면 이번 합병은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핵심 계열사를 하나로 묶었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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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이번 합병으로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은 더욱 강화됐다. 기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SDI→제일모직’순으로 고리를 연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합병으로 지배구조는 삼성물산(합병)→삼성생명→삼성전자로 단순 명쾌해졌다. 제일모직은 삼성생명의 2대 주주(19.3%)로 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지만 삼성전자 지분은 없다. 그래서 그간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7.2%)을 통해서만 영향력 행사가 가능했다.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하고 있던 이 부회장은 합병법인의 지분 16.5%를 갖게 된다. 지분율은 낮아지지만 최대주주 자리에는 변화가 없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1%를 보유해 삼성그룹 계열사 중 삼성생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

 결국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지분이 0.6%에 불과하지만 합병법인을 통해 삼성전자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삼성물산이 갖고 있는 삼성SDS 등 다른 정보기술(IT) 계열사에 대한 입김도 세진다. 아울러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증권·화재·카드 등 금융계열사에 대한 영향력도 강화할 수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그룹이 그간 수차례 사업구조 재편을 통해 ‘곁가지’를 치면서 합병법인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일자형 구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며 “지난주 주요 재단 이사장 자리를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데 이은 이재용 체제 강화 작업”이라고 해석했다.

 그룹 내 중복사업을 재편하고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합병법인은 건설·상사·패션·리조트·식음료 등을 아우르는 글로벌 ‘의식주휴(衣食住休)’ 기업으로 거듭난다. 제일모직이 수행하던 건설·플랜트·리조트부문과 삼성물산의 건설부문이 결합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제일모직 패션부문의 글로벌 전략이 삼성물산 상사부문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결합해 해외 시장 공략에 유리하다.

 건설부문은 두 회사의 조직이 통합된다. 삼성물산이 진행하는 아파트·오피스텔사업에 제일모직의 조경사업 역량이 합쳐져 유기적인 시너지 창출이 가능해졌다. 또 하나의 부수적인 효과는 바이오사업에 대한 오너 일가의 지배력 강화다. 삼성이 신수종사업으로 정하고 그룹 차원에서 투자를 아끼지 않는 분야다. 합병법인이 확보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은 51.2%로 절반을 넘는다.

 합병법인은 현재 34조원(2014년 기준)인 매출을 2020년 60조원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제일모직 윤주화 사장은 “이번 합병은 회사의 핵심 경쟁력을 조기에 확보해 글로벌 초일류 회사로 성장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며 “인간의 삶 전반에 걸친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성장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두 회사는 올 7월 임시주주총회를 거쳐 9월 1일자로 합병을 완료할 계획이다. 제일모직이 기준 주가에 따라 산출된 합병 비율인 1대 0.35로 삼성물산을 흡수합병하는 방식이다. 제일모직은 신주를 발행해 삼성물산 주주에게 교부할 예정이다.

 두 회사의 합병에 대해 증권가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물리적·화학적인 합병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이날 증시에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나란히 상한가로 마감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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