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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아베, 자국 역사학계의 위안부 자성론을 들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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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역사학자 6900여 명을 회원으로 거느린 일본의 16개 역사학단체가 25일 위안부 강제연행을 인정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강제연행된 위안부의 존재는 그간 많은 사료와 연구에 의해 실증돼 왔다”며 “당사자 의사에 반한 연행 모두를 강제연행으로 봐야 한다”고 천명했다.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은 없었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총리의 거듭된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아베 정권과 일본 언론계를 향한 호된 질책도 쏟아졌다. “위안부 문제에서 눈을 돌리는 무책임한 태도를 계속한다면 일본이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발신하는 셈”이라는 비판이었다.

 특히 이번 선언은 역사학연구회·일본사연구회 등 일본 내 5대 역사단체 중 4개가 참여했기에 더더욱 뜻깊다. 일본 역사학계의 주류가 강제연행을 시인한 셈인 까닭이다. 게다가 이달 초 전 세계 역사학자 187명이 아베 총리의 역사 왜곡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데 이어 나온 것이어서 그 울림이 어느 때보다 크다.

 “위안부 등 역사 문제는 역사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누차 강조해 온 건 아베 자신이다. 해외에 이어 자국 역사학자들마저 본인의 역사관을 비판하고 나왔으니 그가 어떻게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자신의 언행에 책임지는 신뢰의 정치인이라면 지금이라도 잘못을 시인하고 위안부 희생자들에게 사과하는 게 옳다.

 아베의 과거사 왜곡과 함께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일본 미디어의 태도다. 위안부 강제연행 문제는 현재 한·일 간 소통을 꽉 막고 있는 핵심 이슈다. 그런데도 요미우리·아사히·마이니치·닛케이 등 일본의 4대지 중 관련 소식을 실은 건 단 하나, 진보적 성향의 아사히뿐이었다. 제한된 소식만 골라 들려주는 선택적 보도는 독자들로 하여금 균형된 시각을 갖지 못하게 한다. 소극적 왜곡이자 ‘저널리즘의 자살행위’다. 이런 상황이라면 모처럼 나온 역사학자들의 충정 어린 호소가 일본 사회에 제대로 파급될 리 없다. 일본 정계와 언론은 불편하더라도 위안부에 얽힌 진실을 직시하고 제대로 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