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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뷰티풀 마인드’ 실제 모델 … 부인과 한날한시에 떠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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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난 2002년 제7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존 내시(왼쪽)와 부인 얼리샤. [AP=뉴시스]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존 포브스 내시(87)는 20세기 최고의 수학자로 손꼽힌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인 ‘비협력 게임(Non-Cooperative Games)’은 수학뿐만 아니라 경제학·국제정치학·정치학·생물학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22세 때 쓴 27페이지짜리 이 논문은 ‘게임 이론(game theory)’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게임 이론에서 ‘게임’은 ‘상대방이 어떤 결정을 했느냐에 따라 나도 어떤 결정을 내릴지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맥락’을 뜻한다.

 내시는 ‘여러 사람이 게임을 하더라도 모두에게 적절한 해답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쉽게 말하면 ‘한쪽의 손실이 다른 한쪽의 이득’인 제로섬(zero-sum) 게임만이 아니라 상호 이득을 거둘 수 있는 상황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냉전 때 미국과 옛 소련이 군축협정을 맺으면 핵탄두 숫자를 줄여야 하지만 대신 안보는 보장받을 수 있던 게 한 예시다. 내시는 이 연구로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는 고교 때 이미 페르마의 정리를 독창적인 방법으로 증명할 정도로 천재였다. 화학공학과로 대학을 들어갔으나 수학에 매료돼 전공을 바꿨다. 48년 프린스턴대 박사과정입학 추천서에 그의 은사는 “이 친구는 천재(This man is a genius)”라고만 썼다.

 학자로서 최고 전성기였던 58년 내시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조현증(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았다. 이후 30년간 망상과 환각에 시달렸다. 뉴욕 타임스의 기사에 숨겨진 비밀 메시지를 해독하면 외계인과 교신할 수 있다고 믿었다. 스스로를 ‘남극의 황제’라고 불렀다. 학계에선 30년 공백을 아쉬워한다. 그가 조현증을 앓지 않았더라면 거뒀을 학문적 성과를 생각해서다.

 그와 함께 사고로 숨을 거둔 부인 얼리샤는 내시의 평생 사랑이었다. 63년 이혼한 뒤로도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하는 내시를 거둬 보살폈다. 두 사람은 2001년 재혼했다. 58년 이후로 학계를 떠난 내시가 잊혀지지 않고 94년 노벨상 받은 데는 옛 동료들의 노력이 있었다. 노벨상 위원회에 여러 차례 내시 연구의 위대함을 알렸다. 내시의 상태는 8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나아졌다. 그는 후에 “의학 때문이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좋아졌다. 결국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됐다”고 썼다.

 그의 드라마틱한 삶은 전기 『뷰티풀 마인드』와 같은 이름의 영화에서 잘 그려졌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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