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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김정은의 공포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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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중앙일보 <2015년 5월 14일자 34면>
김정은 공포정치의 끝은 어디인가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중앙일보>

북한 내 군(軍) 서열 2위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지난달 30일 숙청돼 처형된 것으로 보인다고 어제 국가정보원이 밝혔다. 숙청 이유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대한 ‘불충(不忠)’과 ‘불경(不敬)’이라고 한다. 평양 순안구역 소재 강건군관학교에서 수백 명이 참관한 가운데 일반 소총이 아닌 고사총으로 총살됐다는 첩보도 입수했다고 국정원은 국회와 언론에 공개했다.

 현영철은 김 위원장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고, 지시를 수차례 불이행하거나 이행에 태만했으며, 김 위원장이 주재한 회의에서 조는 등 ‘유일영도체계 10대 원칙’의 일부를 위반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은 2013년 12월 북한 체제의 2인자이자 자신의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국가전복 음모죄로 전격 처형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로부터 1년5개월 만에 군 서열 2위인 현직 인민무력부장을 문명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잔인하게 처형한 게 사실이라면 ‘피의 공포’로 유지되는 것이 김정은 체제의 민얼굴임을 만천하에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꼴이다. 북한에서는 올 들어서만 차관급인 임업성 부상과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 등 15명의 고위직이 처형되는 등 김 위원장 집권 이후 3년 동안 70여 명의 고위 간부가 총살된 것으로 국정원은 파악하고 있다.

 공포정치는 독재자의 전형적인 통치 수법이다. 정통성이 취약하거나 권력 기반이 확고하지 않을수록 충격과 공포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김 위원장은 2011년 말 부친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서른 살도 채 안 된 나이에 권력을 승계했다. 가차없는 처벌에 의존하는 통치 행태는 여전히 체제가 불안하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현영철 처형설과 관련한 북한 당국의 공식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난 3년여간 북한에서 흘러나오는 소식을 종합해 보면 김 위원장이 공포정치를 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피는 피를 부르기 마련이다. 공포정치의 끝이 자멸(自滅)임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바다. 김정은 체제의 앞날을 속단하긴 이르지만 비상한 경각심을 갖고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한겨레<2015년 5월 14일자 35면>
김정은의 반인권적 ‘공포정치’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한겨레>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공포정치가 이어지면서 북쪽 간부들 사이에서 그의 지도력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고 국가정보원이 13일 밝혔다. 사실이라면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계속되는 공포정치는 결국 심각한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김 위원장은 깨닫기 바란다. 국제적 비판과 고립을 피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국정원의 국회 보고 내용을 보면, 북한 군부 내 서열 2위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은 4월 30일께 전격적으로 숙청됐다. 그가 수백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사총으로 공개 처형됐다는 첩보도 있다고 한다. 항공기나 헬기를 요격하는 데 쓰는 무기를 처형 도구로 사용했다는 것인데, 이는 2013년 12월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처형 때의 잔혹함을 상기시킨다. 국정원이 꼽은 숙청 사유는 김 위원장에 대한 불만 표출과 지시 불이행 등이다. 최고권력자에 대한 ‘불경’이나 ‘불충’이 문제가 된 것이다. 국정원은 이 밖에 올해 들어 15명의 고위 간부가 처형됐으며 숙청된 사람도 여럿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공포정치를 이어 가는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추론이 가능하다. 우선 집권 4년 차라고는 하지만 아직 권력 기반이 튼튼하지 않아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불신이 클 수 있다. 젊은 나이에 최고권력자가 된 그는 북한에서 정식으로 학교를 다닌 적이 없는 등 정치적 동지라고 할 만한 세력을 만들 기회가 부족했다. 자존심 강한 그의 성격도 지적된다. 국제 고립과 경제난 등으로 인한 초조감이 거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현영철 부장이 숙청 직전 러시아를 방문했으나 김 위원장의 방러가 이뤄지지 못한 일이 주목된다.

 어떤 경우든 김정은 식의 공포정치는 반인권적이고 반역사적이다. 고위 관리에 대한 공포정치는 북한 주민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중국 등에서도 고위 관리에 대한 숙청이 이뤄지지만 북한과 달리 부패 등의 분명한 명분을 내걸고 나름의 법적 절차를 거친다. 공포정치는 남북 관계를 비롯한 대외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고위 관리들까지 불안에 떨어야 한다면 안정적으로 대외 관계를 추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북한에 필요한 것은 공포정치가 아니라 꾸준한 개혁과 개방이다. 체제의 안전은 공포정치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향상시키고 신뢰 수준을 높임으로써 이뤄지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세계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보기 바란다.

[논리 vs 논리] “남한, 경각심 품고 대비 필요” … “북한, 꾸준한 개혁·개방해야”

지난달 24·25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오른쪽) 주재로 열린 조선인민군 훈련일꾼대회에서 현영철 부장(왼쪽)이 눈을 감고 조는 듯 앉아 있다. 가운데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국가정보원은 현 부장이 불경죄 등으로 처형됐다고 보고했다. [사진 노동신문]

지난 13일 국정원은 북한군 서열 2위로 알려진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공개 처형되었다고 발표했다. 현영철은 김정은 체제 출범 과정에서 그를 측근에서 보좌한 인물이다. 충격적인 점은 현영철이 처형된 이유다. 김정은에게 말대꾸를 했다는 점, 지난 4월 조선인민군 훈련일꾼대회에서 김정은이 연설하는 도중 졸았던 것이 불경죄로 지목되었다고 한다. 고위 관리가 업무와 관련된 실수를 했다면 당연히 문책해야겠지만 단지 최고권력자에게 공손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형까지 당하는 것은 우리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렵다. 더욱이 불경죄로 최측근의 고위 관리를 처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3년에도 자신의 고모부이자 권력 서열 2위였던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처형했다. 그때도 박수를 설렁설렁 쳤기 때문이라고 국내 언론들은 보도했다. 물론 북한의 공식 발표에서는 국가전복 음모, 장성택 우상화, 최고사령관 명령 불복 등의 이유가 언급되었다. 이번 현영철의 경우에도 ‘유일영도 10대 원칙’ 중 세 가지 조항에 위반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언론에서는 김정은의 지배 방식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출범한 지 4년 차가 되는 김정은 체제가 권력 안정화에 위협을 준다고 느끼는 인물을 제거해오고 있다는 점, 그 방법이 고사총 사용 등 매우 잔인하다는 점, 그리고 처형의 빌미를 사소한 감정적 계기에서 찾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측근 간부들을 수시로 감시하고 누구든 불만을 말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면 즉시 처형하는 것은 폭압정치의 전형이다. 이번에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근무태만, 불경 등의 이유로 처형되었다는 소식은 김정은의 공포정치가 잔인한 통치의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갖게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겨레와 중앙이 ‘김정은의 공포정치’를 문제 삼은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이번 사태에 대한 한겨레와 중앙의 논조는 유사했다. 한겨레는 김정은 체제를 ‘반인권적이고 반역사적’ 공포정치라 진단했고, 중앙도 ‘피의 공포’라 표현했다. 그리고 두 사설 모두 사태의 원인 중 하나를 정치적 기반이 부족한 통치에 따른 무리수가 아닌지 물었다. 김정은은 2009년 후계자로 내정된 후 김정일 체제에서 권력을 행사했던 인물들을 기반으로 2011년 급작스럽게 최고 지위에 올랐다. 김정은은 정치 기반이 허약한 지도자가 권력을 장악할 때 사용하는 방법 중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편, 두 사설은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결론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한겨레는 ‘공포정치가 아니라 꾸준한 개혁과 개방’을 요구했다. 중앙은 남한 사회에 ‘비상한 경각심을 갖고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자’고 주문했다. 한겨레가 김정은의 공포정치를 벗어나 자기 변화의 가능성을 다시 물었다면, 중앙은 조심스럽게 그 변화 가능성이 희박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김정은 체제 붕괴에 따른 남한의 대책이 시급함을 강조했다. 한겨레의 경우 주권국가로서의 북한의 변화 가능성에 기대한다면, 중앙은 그 가능성이 어려울 경우 남한 정부의 대안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러한 차이는 북한 체제가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기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한겨레는 체제 내의 유연한 변화로 유도하는 것을 대원칙으로 전제하고 있기에 북한의 개혁·개방을 주문한다. 반면에 중앙은 북한 자체의 변화보다는 비상 상황이 올 경우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두 대안 모두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북한 자체의 변화 가능성이 높을수록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다.

 남북 문제가 어려운 이유는 너무나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두 체제가 통일이라는 공통의 목적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수령론을 정점으로 한 주체사상이라는 독특한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게다가 당·군·정이 통합된 체제이면서 1995년부터는 김정일이 주창한 선군정치를 시행해 왔다. 선군정치는 체제 안정과 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내건 군대 중심의 통치 시스템이다. 또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은 사회주의권 내에서도 사례가 드문 정권 이양 방식이다. 오랜 세월 외부와 단절된 채 통제 경제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외부 소식에 둔하고, 주민들 또한 민주주의적 방식에 거의 훈련되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북한의 개혁·개방이나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는 일의 대상은 북한이지만, 그 대안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하는 쪽은 우리 정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은 그 사회를 들여다보기 힘들고, 간접적으로도 정보를 접하기가 매우 어렵다. 현재로서는 안보 논리도 무시할 수 없다. 안보는 주권국가의 자기 보전 권리이기 때문에 제3의 길은 배제되기 쉽다. 우리 정부로서도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안보를 지키면서 북한을 견인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국제 정세 또한 심상치 않다. 지난 4월 미·일 방위협력지침이 개정되면서 두 국가의 군사적 관계가 긴밀해졌다. 게다가 북한은 5월 초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수중에서 발사했다고 밝혔다. 이 기술은 미·중·러 등 소수의 국가만이 보유한 기술로 북한이 이 기술을 보유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동북아시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촉매가 될 것이다. 5월 19일 미국 국무부 담당자는 한반도에 사드 포대의 영구 주둔을 언급했다. 아직 한국 정부와 협의한 것은 아니기에 공식화되지는 않았으나 모두가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이런 가운데 북한에서는 김정은의 공포정치가 진행되고 있다. 20여 년간 이어져 온 선군정치 체제하에서 만약 군부가 동요한다면 김정은의 권력뿐 아니라 북한 체제 자체가 요동칠 것이다. 안정된 정권이라면 굳이 민심의 이반을 불러올 공포정치가 필요치 않다. 김정은의 공포정치는 권력의 불안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최고위층에 단행되는 공포정치가 북한 주민들에게 닿지 않을 리 없다. 통일의 파트너인 북한 주민의 인권과 한반도의 위기 관리라는 측면에서 김정은의 공포정치에 대한 관심은 중요하다.

▶다음 주 논점  케리 미 국무장관의 사드 배치 발언 논란

6월 2일자에는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사드 배치 발언 논란에 대한 중앙일보·한겨레의 사설과 김보일 배문고 국어교사의 비교·분석 글이 실립니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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