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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국민연금에 대한 2030세대의 불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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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정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시민단체 ‘한국납세자연맹’은 2013년부터 홈페이지에서 국민연금 폐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21일 현재 서명자가 10만7000명을 넘었다. 이 단체는 “국민연금은 다단계 피라미드 사기”라고 주장한다. 하버드대 그레고리 맨큐 교수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초기 가입자는 고수익을 챙기지만 가입자가 줄어드는 순간 파산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란 것이다. 극단적이긴 해도 국민연금 운용 시스템을 들여다보면 딱히 반박하기도 어렵다.

 대부분의 국민은 국민연금을 내가 낸 보험료를 은퇴 후에 내가 돌려받는 구조로 오해하고 있다. 그건 연금 초기 가입자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다. 후대로 갈수록 내가 낸 보험료는 나한테 돌아오는 게 아니라 위 세대의 연금을 지급하는 데 들어간다. 내가 은퇴 후에 받는 연금은 아래 세대가 내는 보험료에서 나온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국민연금이 낸 보험료보다 훨씬 큰 연금 혜택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낸 것보다 더 주는 마술을 부리는 건 국가가 연·기금 운용을 탁월하게 잘해서가 아니다. 아래 세대의 보험료 납부가 계속 증가하는 걸 전제로 깔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강제 가입이니 인구만 꾸준히 늘면 낸 것보다 더 주는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 피라미드 판매망을 유지하려면 가입자를 계속 불려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불행히도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구는 2030년부터 줄어든다.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노인 부양비율은 지난해 17.3명에서 2040년 57.2명으로 폭증한다.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급격한 저출산-고령화 추세다.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낸 것보다 더 주는 국민연금이 어떻게 지속가능할까. 나중에 기금이 고갈되더라도 세금으로 연금을 주면 되니까 걱정 말라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그 세금은 누가 내나. 그런 속 편한 말씀을 하는 분들은 대개 그때쯤에 세금을 안 내는 분일 거다.

 그래서 요즘 2030세대는 국민연금에 대해 굉장히 냉소적이다. 자신들은 덤터기만 쓰고 나중에 연금을 받을 수나 있는 건지 믿을 수 없다는 거다. 이들의 걱정은 과연 기우에 불과한 걸까. 2030세대의 불신을 해소할 책임이 있는 정치권의 요즘 행태는 어떤가. 수십 년 뒤를 내다본 구조 개혁 논의는커녕 정치협상용 숫자 놀음에만 열심이다. 그것도 공무원연금 개혁을 논의하다가 갑자기 국민연금을 끼워넣기로 말이다. 사정이 이러니 국민연금 폐지 서명자가 계속 늘어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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