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그리고 가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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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수은주가 섭씨 33∼34도로 치솟던 지난 8월의 어느날 오후 찜통속에 들어앉아 화롯불을 쬐는 짜증스러운 기분으로 몇년전 갑지를 뒤적거리다가 비국사람들의 기호를 조사하여 보고한 기사를 발견하고지나가는 눈으로 홅어 보던중 계절에 관한 항목을 보고 미국인이야말로 별난데가 있는 국민이라고 혼자서 놀라와한 일이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37%는 가장 좋은 계절을 봄이라 한데 비해 여름을 가장 좋은 계절이라 응답한 사람이 전응답자의 37%나 되었다. 더위에 지쳐 여름을 저주라도 하고싶은 심정인데 미국국민의 37%가 여름을 가장 좋아 한다니 나로선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러나 그 길고 무덥던 여름도 대자연의 정리는 어찌할수 없는듯 스스로 풀이 꺾여 당당했던 위세를 누그러뜨리고만 이 가을의 초입에서 지난여름을 되돌아보니 그 무더웠던 나날들이 지겹게만 여겨지지 않는것은 무슨 까닭일까? 계절은 언제나 어김없이 찾아왔다가는 다시 돌아올것을 기약하고 떠나가는데 그 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는 인간의 감정은 변덕스럽기 짝이 없다. 여름이 저주스러울이만큼 지겹다고 했다가 떠나가는 여름을 곧 아쉬워하니 말이다.
『있는대로 사물을 보는 것이아니고 보는대로 사물이 있다』고 말한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할수는 없지만 계절을 느끼는 인간의 감정도 이와 비슷한것이 아닌가 싶다.지나간 계절에 무엇을 했느냐가 계절의좋고 싫음을 결정하는 것이지 계절 그 자체가 호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아름답고 보람있는 추억을 만들어낸 계절을 그리워한다. 그 계절은 여름일 수도있고 또 겨울일 수도 있다.
우리는 가을을 결실의 계절,수확의 계절이라한다. 그러나「호레이스」 는 가을을 『죽음의 여신이 수확을 거두는 무서운 계절』 이라했고, 「T·W·파슨즈」는『주홍빛 낙엽이 슬픔을 전하고/가을 햇살은 비애로운상념을 잉태한다. /오! 영광과 절망이 불협화하는 계절』 이라 읊조림으로써 가을의 양면성을 노래했다. 가을의 파란 하늘을 우울하게 느낄 수도 있고 반대로 희망으로 느낄 수도 있다. 아름다운 추억들이 알알이 영그는 가을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이상회

<연세대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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