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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한 납북자 4명, 북한 상대 소송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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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사상 처음으로 '남북 쌍방 민사 소송'이 제기돼 법원의 결정이 주목된다.

북송된 비전향 장기수들이 남한 정부를 상대로 10억달러의 피해 보상을 요구한데 이어 탈북한 납북자 4명이 9일 북한 조선노동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상대로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납북자가족모임(회장 최성용)에 따르면 북한에 납치됐다 탈출한 이재근(68), 진정팔(66), 고명섭(63), 김병도(53) 씨 등 4명이 이날 국가인권위원회와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고소장을 접수시켰다.

이들은 고소장에서 "북한에 의해 납치돼 30년 동안 감금과 폭행, 강제노역을 당했다"면서 "북한 노동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인당 1억달러씩 총 4억 달러를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납북자가족모임의 최회장은 이날 오전 이씨와 함께 서울 중구 을지로1가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상담센터를 방문해 고소장을 제출했으며 이들은 고소장을 판문점을 통해 북한에 전달해줄 것을 통일부에 요구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최회장은 납북자 484명에 대해 생사확인 및 조기송환을 요구하는 한편 남한에 있는 가족들의 동의를 받는대로 이들에 대한 보상을 추가로 요구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납북자들의 고소장이 정부에 접수되면 북한 전달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비전향 장기수들의 고소장이 판문점을 통해 남한 정부에 전달된 만큼 정부 역시 ' 형평성'을 고려해 이를 판문점을 통해 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앞서 북한으로 송환된 비전향장기수들이 지난 6일 판문점을 통해 과거 군사정권시절 겪었던 탄압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내용의 공동고소장을 남측에 전달했다. 이 고소장은 남측의 국가인권위원회와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를 수신기관으로 하고 있으며 한나라당에 대한 비난을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다.

고소장은 "전대미문의 극악한 사상전향 제도로 하여(인해) 우리 비전향 장기수들은 30~40년의 기나긴 세월 남조선의 철창 속에서 참을 수 없는 고문과 박해, 학대를 강요당하지 않으면 안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비전향 장기수들에게 악행을 저지른 파쇼독재 정권시기의 주모자와 교형리들, 그리고 후예들을 역사와 민족의 심판대에 세워 엄격히 처형해야 한다"며 "남조선에서 과거 독재정권의 법통을 이어받은 조직적 세력은 다름 아닌 한나라당"이라고 비난했다.

고소장은 또 한나라당에 대해 사죄와 보상, 역사무대에서의 은퇴를 요구하면서 비전향 장기수의 육체적 피해가 10억 달러에 달할 뿐 아니라 감옥에서 사망한 장기수의 몫까지 감안하면 수십억 달러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소송의 쟁점이 피해 사실의 입증에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납북자들의 경우 국내 법원에 북한 조선노동당이나 김 국방위원장 등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수는 있다. 소송 결과는 피해 사실의 '입증'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이들을 납치해 30년간 감금하고 폭행했다는 점을 증명하는 일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증거를 찾기가 어려운데다 북한에 있는 관련자들의 증언을 얻거나 현장 검증을 할 길도 막막하기 때문이다. 혹시 소송에 이기더라도 북측이 배상을 거부할 경우 강제집행을 들어가기도 불가능하다. 소송에 '실익'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비전향 장기수들 역시 국내 법원에 소송을 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들이 국내 법원 에서 열리는 재판에 참석하거나 최소한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인지대도 걸림돌이다. 이들은 10억달러를 요구하고 있다. 이 경우 인지대만 35억여원에 달한다. 또 비전향 장기수들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 손해를 안 날 로부터 3년 안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피해사실을 입증한다해도 시효가 지난 상황이다.

연합뉴스, 디지털뉴스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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