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군포로·납북인사 인권부터 따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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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송된 비전향 장기수들이 '군사정권 시절의 탄압에 대한 피해보상 10억 달러'를 요구하는 고소장을 남측에 전달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의 실로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북측의 장난은 그렇다 치고, 노림수가 뻔한 데다 이치에도 닿지 않는 이따위 농간 서류를 거부하지 않고 덜컥 접수한 정부의 처사는 또 뭔지, 울화가 치민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인도주의에 입각해 북행을 희망하는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북으로 보냈고, 28명의 추가 송환도 전향적으로 검토 중이다. 이들은 대부분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포로이거나 남파 간첩 출신이다.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을 위해 헌신한 인물들로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교란한 중대한 범죄자다. 그런데도 이들을 북으로 돌려보낸 것은 남측이 넓은 아량을 베푼 결과다. 남북 화해 분위기를 확산시키려는 정책의지와 이들이 고령이란 점이 고려된 것이다.

남쪽엔 이들의 북송을 피눈물로 지켜봐야 했던 사람들이 숱하게 많다. 국군 포로와 납북자 가족이 그들이다. 이들은 북에 억류된 가족들의 생사조차 몰라 애태우고 있다. 오죽하면 '노란 손수건'을 매달며 사회가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하고 있겠는가. 이들의 호소는 외면하면서 탄압을 보상하라니 정말 뻔뻔스러운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일은 남남 갈등을 부추기려는 또 하나의 선전.선동술일 뿐이다. 북은 이미 신년 공동사설에서 "미제의 새 전쟁 도발 책동을 짓부수기 위한 투쟁에 총궐기하자"며 남한 내 반보수대연합 구축을 촉구했다. 이제 각종 선거를 앞두고 북한은 더욱 교묘하고도 집요한 방법으로 이간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이제라도 고소장을 일축해야 한다. 고소장의 수신기관으로 돼 있는 국가인권위원회와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이를 의제로 삼는 일조차 있어선 안 된다. 북의 간교한 술책에 말려드는 것이며, 우리 쪽 인권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남파 간첩들의 인권을 말하기에 앞서 국군 포로와 납북자의 인권, 그리고 북한의 인권 문제부터 짚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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