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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연금재정 악화로 경제위기 자초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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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원종 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미래전략연구실장

국민연금의 명목소득대체율을 50%로 올려 모두가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득보장제도는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시행하는 제도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에게 많은 보장을 해주기 위해 다수를 불행하게 만든다면 과연 그것이 진정한 사회보장제도의 취지인지 의문이다. 소득대체율 인상으로 혜택을 많이 받는 사람들은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는 계층이다. 고용 불안으로 연금에 가입하지 못했거나 가입 기간이 매우 짧은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혜택도 돌아가지 않는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세대 간 재분배다. 보험료를 올리지 않으면서 소득대체율만 인상하면 후세대에 넘기는 부담 규모가 더 커진다. 소득대체율 50% 효과를 평가하기 전에 현재 상황이 얼마나 참담한지를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60년에 기금이 고갈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그 이후다. 일부 전문가들은 2060년 고갈을 전제로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하는 데 소요되는 추가 보험료만을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2060년 이후 국민연금제도의 문을 닫고 끝을 낼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소득대체율이 40%인 현재 상황에서도 고갈 이후 급여지출을 위해 투입돼야 할 재정 규모는 막대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재정추계 전망이 과장됐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출산율이 높아지거나 다른 변수가 개선되면 수치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앞으로 상황이 더 좋아질 가능성은 낮다는 게 문제다. 우선 2013년 국민연금 재정추계에서 사용한 출산율은 장기적으로 1.4까지 상승하는 것으로 가정돼 있으나 현재 수준인 1.19를 감안할 때 매우 낙관적인 전제다. 그리고 기금운용수익률 또한 2020년까지 7%를 넘는 수준이 적용됐고 2026년까지 6%대를 거쳐 2036년까지는 5%대로 하락하고 2083년까지는 5% 수준으로 수렴하는 가정을 사용했다. 2013년 기금운용수익률이 4.19%, 2014년에는 5.25%인 점을 감안한다면 기금수익률도 현실보다 얼마나 낙관적으로 가정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보험료 인상을 거부한다면 결국 세금으로 약속된 급여를 지급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는 법적으로 일반재정에서 국민연금급여를 책임지지 않는 체계다. 하지만 고갈됐다고 연금 지급을 중단했다간 엄청난 반발에 직면할 것이다. 결국 나중엔 세금으로 충당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세금을 더 거두든지 국채 발행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2060년보다 훨씬 이전인 2040년께부터 대한민국 국가재정의 파탄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해외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쏟아져 나올 게 뻔하다. 따라서 보험료가 지속적으로 인상되지 않고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보다 더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을 맞이할 것이 분명하다.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는 것은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현재 상황에서도 다음 세대의 등골은 휠 수밖에 없다. 지금도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암울한 미래를 물려줘야 할 것인가를 놓고, 베이비부머를 포함한 부모 세대들의 냉철한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복지지출은 2035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20%를 넘어설 전망이다. 2012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22%이므로 이즈음 우리의 복지지출은 OECD 평균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저성장기에 복지지출이 크게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북유럽과 유럽 대륙 국가들의 경우 이미 1980년대에 20%를 넘어섰다. 그 당시 경제성장률은 10%를 넘는 수준이었다. 또 일본처럼 국민부담률을 낮게 유지하려면 국가부채로 충당해야 한다.

 우리 자식 세대들이 부담해야 하는 것은 높은 국민연금보험료만이 아니다. 부모 세대들을 위해 건강보험료도 많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15년 소득활동인구의 사회보험부담률(GDP 대비)은 6.14%인 데 비해 2040년 13.89%, 2050년엔 15.63% 등으로 급증한다. 부모 세대에 비해 인구 규모가 적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1인당 부담은 훨씬 커진다.

 이제 우리 자식 세대가 처하게 될 재앙적 사태를 고려해 결단을 내려야만 할 때다. 예를 들어 베이비부머 세대는 은퇴 전까지 20% 이상의 보험료를 납부하고 이미 급여를 받고 있는 수급자들에 대해서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급여 상승을 중지하는 등의 극단적 조치가 필요하다.

 국민연금과 관련해 또 다른 이슈는 기금 운용이다. 거의 500조원에 달하는 기금 운용을 국민연금공단의 한 부서인 기금운용본부에서 담당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해외 투자가 급증하고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지만 공단과 함께 전주시로 이전해 기금을 운용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따라서 비전문가가 대부분인 기금운용위원회를 전문가 중심 체제로 바꾸고, 기금운용본부도 해외 연기금과 경쟁할 수 있는 별도의 공사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원종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미래전략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