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기자의문학 터치] 신인은 무엇으로 구별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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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능숙한 묘사나 현란한 표현, 정교한 구성마저 장착하면 이미 대가이지 신인이 아니다.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하여 박진규의 '수상한 식모들'(문학동네)은 충분하다. 충분하다는 건, 29세 신인이 쓴 첫 장편으로서 그렇다는 얘기다.

소설의 압권은 상상력의 스케일이다. 소설은 감히 단군신화를 손댄다. 마늘과 쑥을 먹어 여성으로 태어난 곰의 반대편에는 굴을 뛰쳐나와 온갖 짐승 잡아먹은 호랑이가 어찌어찌하다 환생한 여성이 있었다. 이 여성은 '호랑아낙'이라 불렸고 훗날 '수상한 식모'로 이어져 우리네 역사 곳곳에서 은밀히 세상을 주물렀다고 소설은 장렬하게 선포한다.

여기서 주목할 바는 단군신화에 대한 섬뜩한 해체다. 소설에 따르면 환웅이 시키는 대로만 해야 인간이 된다는 건 지배층에 절대복종해야 성공한다는 논리이며 마늘과 쑥의 채식주의는 수동적 여성성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다.

무엇보다 '수상한 식모'라니. 수상하다는 표현은 '인위적 실수' 따위의 탈문법적 조어를 전파하는 과학자나 서울말 어눌하게 구사하는 남파간첩에게나 어울리는 형용사다. 식모는 산업화 시절, 도시화 또는 농촌해체의 한 형식이었다. 그 형식이 수상하다는 건 자본주의 체제가 못마땅하다는 거다. 주인공 경호가 100㎏이 넘는 것도 비만이 자본주의의 한 상징이어서다.

이탈리아 화가 모딜리아니의 '젊은 하녀'와 김기영 감독의 1960년 작 '하녀'가 모티브였다고 작가는 밝혔다. 우아하고 긴 목선의 그림 속 하녀와 희고 건강한 종아리의 영화 속 하녀는 성적 코드를 암시한다. 하층 계급 출신의 젊은 여성이 부르주아의 나른한 일상으로 편입된 상태가 식모의 사회학적 조건이다. 이와 같은 구조라면 사달 나는 건 외려 당연한 결과다.

소설은 발랄하다. 아파트 베란다와 욕실을 새로이 해석한 대목 등에선 도시를 사는 중산층 청년의 신선한 감각도 발견한다. 중간 중간 힘들어하는 대목도 보였지만, 그래도 충분하다. 작가는 2년 전 이 작품을 '문학동네소설상'에 냈다 떨어졌다. 그리고 2005년 일일이 타이핑하며 절반 이상을 뜯어고쳤고 지난 연말 기어이 '문학동네소설상'을 차지했다. 배포만 큰 게 아니라 독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충분하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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