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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나마스테! 모디 총리

중앙일보

입력

인도의 북서부 구자라트의 여름은 덥다. 먼지가 펄펄 날리는 시골버스 터미널에 드나드는 사람들도 더위에 지친 표정이다. 털털 거리는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은 터미널 한쪽에서 시원한 차(茶水)를 파는 간이 노점(tea stall)으로 간다. 형제인 소년 두 사람이 연신 얼음에 식힌 차를 잔에 담아 판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소년들은 어릴 때부터 기차역에서 차 행상을 하는 아버지를 도와 차 팔아 보아서인지 손님이 원하는 것을 재빨리 알아낸다. 그 중 한 소년이 인도의 총리(Prime minister)가 되어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였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이다.
나렌드라는 인도의 카스트에서 바이샤(평민)계급의 간치(착유업 oil-presser)집안 출신의 6자녀 중 3째이다. 그는 정치에 입문하여 구자라트 주(州) 수상(Chief minister)을 4선이나 하였지만 ‘미스트 크린(Mr. Clean)'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부모가 정해 준 조혼(早婚)에 실패하여 자녀가 없고, 홀어머니는 낡고 작은 아파트에 살며 형제들은 동네 야채가게를 하면서 생활한다.
2014년 5월 만년 야당이었던 인도인민당(BJP)이 30년 만에 단독으로 하원(Lok Sabha)의 과반 의석을 차지 정권을 잡았다. 만모한 싱 총리가 이끄는 인도국민의회(INC)는 부패와 경제정책의 실패로 국민의 신임을 잃고 있었다. ‘모디노믹스(Modinomics)’로 유명한 경제수완가 구자라트 주의 모디 수상의 승리였다. ‘문제는 경제야’라는 말이 인도에도 통했다. 2013년 미국의 양적완화의 축소로 인도 루피 화의 폭락이 이어졌고 인도 경제는 국제 통화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신청해야 할 정도로 나빴다. 구자라트 주 모디 수상이 인도 경제를 살리는 구원투수가 된 것이다.
모디 수상은 영국의 대처총리, 미국의 리간 대통령과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주 수상 재임기간(2001-2014)에 구자라트 주 경제성장률을 평균 13.4%로 끌어올려 인도의 전체 평균 성장률의 두 배가 되었다.
모디 수상은 구자라트주의 제조업 발전을 위해 규제 없는 경제, 기업이 토지 취득을 쉽게 하는 등 친 기업 경제 정책을 내세웠다. 발전소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확충을 통해 기업투자를 유치하여 높은 경제 성장 달성하는 것이 모디노믹스였다.
모디 수상은 구자라트 주의 외자 유치를 위해 아베 총리 등 일본의 정치 지도자, 스즈키 자동차의 스즈키 회장 등 일본의 재계 지도자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한국도 다녀갔다. 이러한 대외활동이 구자라트 주를 인도의 어느 주보다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게 하였다.
인도는 급성장한 경제를 배경으로 군사대국화 하는 중국의 부상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 제2위의 에너지 수입국인 중국은 에너지 확보를 명분으로 홍콩에서 수단까지 해상로 안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른 바 ‘진주목걸이(string of pearls)정책’으로 불리는 홍콩부터 인도양의 주요 항구를 진주목걸이처럼 이어 주는 해상 실크로드의 건설이다.
또한 중국은 시안(西安)에서 티베트 네팔 그리고 파키스탄으로 잇는 육상 실크로드도 준비하고 있다. 이른 바 일대일로(一帶一路 바다와 육지의 신 실크로드 계획)는 중국이 남으로는 해양, 북으로는 대륙에서 인도를 포위하고 있는 모습이다.
인도로서는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경제발전을 최 우선으로 생각하였다. 인도 국민은 경제발전에 매직 핸드를 가진 모디노믹스의 모디를 불러 인도의 구자라트 화(化)를 원했다. 모디 수상이 이끄는 인도인민당 대승의 배경이다.
모디 총리에게는 운(運)도 따랐다. 그가 취임 이후 유가인하 등 세계 경제가 우호적인 환경으로 바뀌어 인도경제가 다시 살아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국제 통화기금은 인도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중국(6.8%)보다 높은 7.5%로 예상하고 있다.
시골 버스 터미널에서 차 행상을 하던 나렌드라는 틈틈이 공부하여 구자라트 대학을 졸업하였다. 어릴 때부터 힌두교 지상주의에 영향을 받아 ‘민족의용단(RSS)’에 가입하고 후에 인도인민당 당원이 되었다. 전임 인도국민의회의 만모한 싱 총리가 시크교도로 캠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옥스퍼드 대학의 박사를 취득한 경력과 비교된다.
모디 총리의 출신지 구자라트 주는 종교적 민족적 색채가 비교적 강하다. 구자라트는 예로부터 중앙아시아 와 페르시아(이란)에서 인도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 인도의 동북부가 8000 미터 높이의 히말라야 산맥으로부터 가로 막혀 있지만 구자라트 주가 소재하는 북서부는 인더스 강이 흐른다. 따라서 인도아대륙으로 들어 가기위해서는 인더스 강이 흐르는 계곡이 유일한 통로였다. 인도라는 국명이 서양에 알려진 것도 인더스 강에 의한 것이다.
7세기 당(唐)의 고승 현장(玄?)법사가 수도 장안(長安 현재의 시안)을 출발 중앙아시아를 돌아 불경을 구하러 인도로 들어 갈 때도 관문인 구자라트를 먼저 찾았다. 현장법사가 귀국 후 기술한 ‘대당서역기’에 구자라트(古古拉特)가 소개되어 있다.
이러한 인연으로 2014년 9월 시진핑(習近平) 중국의 국가 주석이 인도를 방문할 때 뉴델리에 앞서 모디 총리의 고향이며 현장법사가 불경을 구한 구자라트 주를 먼저 방문하였다. 지난주(5.14-16) 중국을 방문한 모디 총리는 답례로 베이징에 앞서 시안을 먼저 찾았다. 산시성(陝西省)의 시안은 시진핑 주석의 고향이지만 현장법사가 인도를 다녀 온 후 불경 번역을 한 곳이다.
영토문제 등으로 갈등관계의 중국과 인도가 모디 총리 이후 정상 간의 상호 ‘고향외교(家鄕相會)’로 친밀해졌다. 실리외교를 지향하는 현실주의자인 모디 총리의 중인(中印)양국관계는 ‘인치(英寸)에서 마일(英里)로’ 도약하고 있다고 하고, ‘용상공무(龍象共舞 용과 코끼리의 카플 댄스)’를 하고 있다고도 한다. 모디 총리는 시안에서 현장법사가 가져 온 불경을 번역 보관한 대안탑(大雁塔)을 찾았다. 모디 총리의 고향이 현장법사의 취경지(取經地)라면 시진핑 주석의 고향은 현장법사의 역경지(譯經地)이다. 인도와 중국은 현장법사를 공통분모로 가까운 시일 내 ‘대당(大唐) 현장’이라는 영화를 공동 제작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인구 26억의 친디아(중국과 인도)의 부상이 눈앞에 보인다.
구자라트 주는 반 이슬람과 힌두교 지상주의가 강하다. 이슬람교 국가인 파키스탄과 경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영국의 통치하에는 같은 인도였지만 종교를 중심으로 두 나라로 분리 독립되었다. 따라서 종교적 분쟁이 일어 날수도 있는 곳이다. 2002년 발생한 ‘구자라트 폭동’은 종교 폭동으로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 사이의 충돌로 알려져 있다. 당시 구자라트 주의 모디 수상은 서양 언론으로부터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한 때 모디 수상에게 비자 발급마저 거부했다. 그러나 모디 수상이 인도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서양 언론이 친 모디로 전향하고, 모디 총리 취임 후에 미국은 존 케리 국무장관을 파견 인도와의 관계강화를 모색하였다고 한다.
모디 총리 역시 ‘국민과 함께’라는 슬로건으로 과거와 다른 행보를 내 비추었다. 그는 총리가 되자 예상외의 제안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반 이슬람교 힌두교 지상주의자로 여겼던 모디 총리가 자신의 취임식(swearing-in ceremony)에 사리프 파키스탄의 총리를 초대한 것이다. 종교적 화합을 위한 통 큰 제안이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각 각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어느 한쪽의 총리가 다른 한쪽 총리의 취임식에 초청을 받아 참석한 예가 없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의 사리프 총리 역시 통 큰 응답으로 취임식 초청을 수락하고 참석하였다.
모디 총리는 이제 경제 지상주의자로 변신하여 글로벌 행보를 주저하지 않는다. 취임 1년 만에 인근 국 부탄과 네팔을 위시하여 미국 중국 일본 등 18개국을 방문했다. 구자라트 주의 경험을 살려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의 기치를 내 걸고 해외 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여 인도를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려는 ‘세일즈 외교’의 일환이다. 모디 총리의 정책이 성공한다면 언젠가 우리는 '메이드 인 인디아(Made in India)' 없이는 하루도 보낼 수 없는 날이 올지 모른다. 모디 총리의 임기 내 엄청난 발전을 이룬 인도(Incredible India)가 예상된다.
모디 총리의 이번 방한기간도 절묘하다. 석가 탄신일(5월25일)을 불과 며칠 앞둔 날이다. 모디 총리는 이를 감안해서인지 보리수나무를 선물했다. 기원전 7세기 인도의 보드가야에서 싯다르타 왕자가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Buddhahood)이 되어 유명해진 보리수나무(Bodhi tree)의 직계후손이라고 한다.
한인(韓印)정상의 공동성명을 보면 양국은 정상회담을 연례화한다고 한다. 인구 12억 세계 제2위의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는 인도와 ‘특별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격상된 한국은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가 예찬했던 21세기의 ‘동방의 등불’이다. 한국은 모디 총리의 ‘동방정책’의 종착역이다.
세일즈 외교를 내세운 모디 총리의 이번 첫 방한에서는 공업도시 울산을 방문하지만 다음에는 허황후가 살았던 김해를 방문하기를 기대한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과 결혼한 인도 아요디아의 슈리라트나(허황후)공주가 인도에서 차(茶)종자를 가져왔다고 한다. 한국의 차의 기원이다. 어릴 때 차 행상을 한 모디 총리는 김해에서 허황후(허황옥 슈리라트나)가 가져 와 보급된 한국의 차를 마시면서 한국과 인도의 2000년 이상된 깊은 우의를 느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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